개독교말고 기독교 (Making Sense of Christianity)

1.4 배경지식 (1) : about the Bible

HYOZAN 2020. 12. 23. 11:00

배경지식만 있었어도 제대로 이해했을 수 있는 일들, 혹시 경험한 적이 없으신가요? 

기독교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1. 배경: 근거의 상대성

우리 인간에겐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건,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일이건, 주위 환경을 바라볼 때

우리가 이미 믿고 있는 것을 지지하는 의견을 수용하기 쉬운 인간의 심리를 부르는 전문용어 입니다.

 

테슬라 주식을 산 후에 주식이 떨어진 것을 시사하는 기사들은 믿고 싶지 않아 하는 바로 그 성향이죠.

어린 시절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좋아함의 대상이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오해하게 만드는 그런 성향이요.

이미 자신이 속한 집단을 지지하는 의견을 믿고 싶어하는 그 성향은 어쩌면 당연한 걸 수도 있죠.

우리가 믿고 있는 그 세계가 흔들리길 원하지 않으니깐요.

 

각자가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정치적 그룹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성향이죠.

주로 스스로를 대상으로가 아닌 나와 다른 그룹을 바라볼 때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성향이지만요.

  

  특히 유튜브, 페이스북의 추천알고리즘의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연령층과 상관없이 비슷한 ‘관심 있는 성향의 의견에만 노출되기 쉬운 게 사실입니다.

 

검색엔진이라는 것을 통해서 획득할 수 있는 정보라는 것도

어떤 키워드를 입력해서 보느냐에 따라 무한한 정보의 세계에서 내가 원하는 쪽의 정보를 골라서 보게 되니깐요.

 

    그래서 이런 제 안의 정보의 비대칭을 발견한 이후,

전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반대입장에 노출시키는 걸 연습해보게 되었습니다.

 

    종교라는 걸 마주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이미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신앙을 지지 하는 ‘근거'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을 수 있고,

그런 추상적인 실재적인 것보다 소위 과학적이라는 것에 세계관을 기반한 사람들은 다른 결론을 지지하는 근거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전 지난 5년간 양 쪽의 의견을 동시에 들을 수 있는 토론을 일부로 찾아보며 지냈습니다.

유신론자들이 내세우는 근거와 무신론자가 내세우는 근거를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으니깐요.

 

    또 학계에서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로 돌아선 사람들의 연대기, 그들의 여정에 대한 기록도 많이 읽어봤습니다.

문학계에선 C.S루이스(옥스포드 교수, 작가)가 있겠고, 과학계에선 프란시스 콜린스 (생물학자/의사/미국국립보건원 원장) 같은 사람들의 책을 통해서요.

    

    전 개신교 배경에서 성장했고, 의심 많은 성격이면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차피 유신론도 무신론도

서로를  명확하게 증명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성경을 탐구하진 않았습니다.

 

순환논리라는 단어를 모를 때부터 “성경은 진리다. 성경에 그렇게 쓰여있기 때문이다.” 라는 논리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니깐요.

    

지난 4-5년간 과학의 세계, 이성의 세계, 논리의 세계에서 이뤄지는 많은 논증과 양쪽의 근거를 찾아보며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지만, 성경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20년 가을에 들어서야 기독교인들의 경전인 성경이라는 것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언어 덕후로서 성경의 번역본이란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될 일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건 다른 장에서 상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국제적으로는 개신교와 천주교를 통칭해서 ‘기독교Christianity'라고 하는데, 우선 그 기독교인들의 경전인 성경에 대해 얻게된 지식을 나눠보려 합니다.

 

2. 성경에 관해서

CS루이스라는 똑똑한 작가의 말을 인용하며 본론에 들어가보려 합니다.

“와인따개부터 대성당까지 어떤 완성품을 평가하기 위한 자격의 첫번째 요소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고,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 우선 우리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게 우선이다: 만약 우리가 와인따개가 통조림을 열기 위한 도구라든가, 대성당이 관광객을 즐겁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것의 목적에 대해서 아무말도 할 자격이 없다"
(The first qualification for judging any piece of workmanship form a corkscrew to a cathedral is to know WHAT is is - what it was intended to do and how it is meant to be used… The first thing is to understand the object before you: as long as you think a corkscrew was meant for opening cans or a cathedral for entertaining tourists you can say nothing about their purpose.) - C.S Lewis, A Preface to Paradise Lost  

    즉 성경이 무엇인지 모르면 성경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지 역시 알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됩니다.

스크류 드라이버로 흙을 판다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겠지만, 스크류 드라이버의 용도는 나사를 돌리기 위해서죠.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그냥 교회에서, 목사님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니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종교 집단 밖의 사람들은 단순한 신화가 담긴 이야기책, 혹은 종교인들의 의식, 도덕 규범이 담긴 책으로 이해하고 계신게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됩니다.

 

    단순화된 버전은 주로 현실의 스펙트럼을 제대로 담고 있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럼 '성경의 현실'이 어떤지 간단히 짚고 넘어가보려 합니다.

 

성경은 한 권의 책이다?

    우선 성경은 한 권으로 되어있어 ‘한 권의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개신교를 기준으로 66권의 다른 책들이 한 권에 묶여져 있는 ‘작은 도서관'에 가깝습니다.

고대 유대인들의 역사 속에서 남겨진 문헌들과 예슈아*라는 인물이 나타난 후에 쓰여진 문헌들이 종합된 여러 장르가 포함된 작은 도서관 같은 책이죠. (*우리나라의 어감이나 미국의 ‘지저스'보다 더 원래 이름에 가까운 히브리어 발음을 차용하겠습니다.)

 

성경은 신화이다? 작은 도서관에 포함된 문학장르

    성경의 장르를 하나로 구분하면 거대 서사(epic narrative)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들 안의 문학 장르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해서  통계를 내자면 ‘내러티브(narrative)’ 형식이 502 장(chapter)으로 43%를 차지하고, 시가(Poetry) 387장 으로 33%, 연설이나 편지같은 ‘담화(discourse)’가 300 장으로 24%를 차지 합니다.

    내러티브, 시, 담화는 다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쓰여졌기 때문에, 그걸 읽고 해석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합니다.

How to Read the Bible: Literary Styles (Bible Project)  

내러티브는 등장하는 인물 등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고,

시는 정보 전달이 목적이라기보단 저자의 감정을 표현하고 독자가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게 목적일 것이며,

담화는 직접적으로 당시 청중 혹은 독자에게 하는 직설적인 메시지가 담겨있을 것입니다.

 

 

성경 속의 하이퍼링크 

조던 피터슨(Jordan B. Peterson)의 심리학 강의에서 본 멋진 그래프를 하나 소개 하려 합니다.  

아래 이미지는 성경의 매 장(chapter)들의 상호참조(cross-reference) 되는 것일 시각화한 그래프 입니다. 

Visualization of Bible Cross-References - Chris Harrison

"The bar graph that runs along the bottom represents all of the chapters in the Bible. Books alternate in color between white and light gray. The length of each bar denotes the number of verses in the chapter. Each of the 63,779 cross references found in the Bible is depicted by a single arc - the color corresponds to the distance between the two chapters, creating a rainbow-like effect." 

 

[TMI] 위의 하얀색, 회색으로 표현된 막대그래프가 성경의 책/장/챕터를 표시합니다.
(창세기 하얀색, 출애굽기 회색, 레위기 하얀색, ..)

바의 길이는 그 장의 절(verse)의 수량입니다.

총 63,779개의 상호참조(cross-reference)가 존재하고, 이는 호(arc)를 통해 표시됩니다.

두 챕터의 거리를 다른 색깔로 표시하면 위와 같이 됩니다. 

중앙에 있는 가장 짧은 하얀색 막대가 총 595개 장 중 가장 짧은 시편 117편(Psalm 117)이고

그 옆의 가장 긴 막대가 가장 긴 장인 시편 119편입니다. 

 

이 그래프를 보면 성경이라는 '작은 도서관'을 한 권의 책으로 분류하는 게 얼마나 '과도한 단순화'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성경 안에는 소위 ‘역사서’라고 불리는 부분도 이야기에 포함시킨 건 그 기록이 이야기의 서사구조를 띄고 있기 때문이고, 그게 역사가 아니라는 해석을 하고 있는 건 아님을 우선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성경에 쓰여진 모든 게 과학적인 사실 혹은 역사적인 사실이냐라는 질문 자체는 엄밀히 말하면 좀 애매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경에 시라는 장르가 포함되어 있고, 담화에는 비유와 과장 등 여러 종류의 문학적 기법이 있을텐데, 이 ‘작은 도서관' 을 통틀어 픽션이냐 논픽션이냐 하고 질문을 하게되면 문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독해능력이 부족하다고 오해받을 수 있는 거죠.

    

    한편 신앙이 있으신 분들은 그런 질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니 오류가 없다'는 식의 교리로 답변을 주시면 아쉽게도 거기서 소통은 불가능하게 되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리는 게 하나님이 직접 쓰신 게 아니라는 건 당연히 아실 거고, 사람의 손을 통해, 그 시대의 종이를 대체하는 매개체를 통해서 기록이 되었을텐데, 그걸 그냥 종교적인 단어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르면 종교가 없는 사람으로서 더 이상 어떤 대화도 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아쉬운 일이죠.

 

성경이 기록된 시간

    심지어 성경 중 구약의 첫번째 책인 창세기는 기원전 1450-1410년 정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하고,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이르면 65년, 늦으면 95년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연대에 대한 확인은 고대 언어에 대한 학문을 통해서 파악한다고 합니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그 시대의 다른 고문서들을 통해서 대조할 수 있는 거죠.

물론 창세기의 기록연대에 대해서도 정통학파에 도전하는 학자들은 그것보다 더 후세에 쓰여졌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일단 정설을 기준으로 가겠습니다.

고고학의 연대는 정확하게 맞추기 어려워서 추정치라는 것만 참고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약 1500년에 걸친 긴 시간대에 쓰여진 고대문서들이 하나로 묶인 책을 기독교인들은 ‘성경'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잠언(Proverbs)이라고 불리는 ‘지혜서' 중의 한 권은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의 글부터 히스기야(Hezekiah)라는 왕의 글까지 담겨 있는 걸 봤을 때, 잠언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안에서 200여년 정도 누적된 글들을 하나의 책으로 엮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한 권을 한 사람이 쓴 게 아니란 이야기가 되구요.

 

사마천의 <사기>의 기록시기가 기원전 109-91년 정도, 한국 역사 상의 최초의 역사서인 <삼국사기>가 1145년 정도로 알려져있습니다. 한편 기원전 천년대부터 히브리 민족의 전통에는 아주 초기부터 ‘필경사(scribe)’라고 불리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의 역사를 기록해왔습니다.

 

    기원전 17세기 족장시대부터 기원전 13세기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기원전 1020여년 대 군주제가 성립하고, 기원전 1000년 대에 다윗왕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게 됩니다.

현대 개념의 국가를 이루게 되는 히브리 사람들은 국가를 이루기 전부터 역사 속에 ‘신'이라는 존재가 그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역사적 사건 속에 함께 했다고 믿었다고 볼 수 있구요.

그래서 그들의 역사엔 늘 ‘신'의 ‘개입'에 대해 기록됩니다.

 

    그들의 기록에 ‘신'이 언급되었다고 그들의 역사 기록 전부를 등한시하기엔 이 히브리 민족은 그 조상 아브라함 기원부터 시작된 일이기 때문에 전부 배제할 경우, 남길 게 없어 집니다.

메르넵타 석비

성경에 포함된 기록들을 제외하면 기원전 1209년 대쯤의 이집트 메르넵타 석비라는 것에 기록된 ‘이스라엘 민족'으'로 해석되는 글귀가 있다고 합니다.

메르넵타 석비의 "이스라엘 민족"으로 해석되는 구절.

 

"Israel is laid waste and his seed is not;" 

이스라엘은 황폐해졌고, 그들의 씨(후손)은 없다' 

 

이게 성경이라는 고대문서 외의 가장 오래된 이스라엘에 관한 역사적 기록입니다. 

 

이집트 비석에 기록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내용이죠.

종종 성경 속의 이스라엘 민족이 실존했고, 정말 이집트에서 노예생활 했다가 탈출했다면,

왜 이집트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냐는 질문을 볼 때가 있습니다.

 

일단 기록은 존재하고, 그들의 기록에 따르면 이스라엘을 전멸하고 없어야 하지만,

지금도 많은 노벨상을 배출하는 민족으로 남아있죠. 

 

파라오를 신으로 취급했던 이집트 인들을 그들의 파라오가 겪은 수치스러운 일들을 기록했을지 의문을 갖아봅니다.

 

성경의 구분

    이렇듯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인간의 손으로 기록된 이 ‘작은 도서관'은 개신교 안에서 두 부분으로 구분 합니다.

 

    개신교 성경은 구약이라고 불리우는 기존 유대인들의 경전 ‘타나크'와 예슈아라는 사람이 출현한 이후 그 제자들의 기록으로 이루어진 신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천주교의 성경에는 개신교의 성경보다 더 많은 책들이 소위 ‘제2경전’이라는 것들을 포함되어 있는데, 이 책들은 개신교에선 종교개혁을 하는 과정에서 예슈아와 그 제자들이 인용했던 ‘타낰’까지만 포함시키고, 그 외의 것은 제외하게 됩니다.

 

예슈아의 가르침, 그 제자들의 가르침과 다르기 때문에 같은 권위를 부여할 수 없다고 판단되어 제외시키게 된 거죠.

(좀 더 복잡하고 디테일한 이야기가 많이 있는 걸로 알려져 있지만 그건 다른 기회에 알아보기로 하고 하겠습니다.)

 

    유대인들의 경전 ‘타낰'은 개신교의 구약이 조금 다른 분류와 순서로 정렬되어 있으나 거의*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난 저도 삼십 중반이 되도록 구약을 다 안 읽어봤을 정도로 굉장히 읽고 싶지 않고 친해지기 어려운 책입니다.

    

타낙, 즉 구약(Old Testament)으로 불리는 이 모음집을 개신교에선 역사서(토라), 시가서, 예언서로 구분하고, 유대인들은 율법서(토라), 네비임(예언서), 케투빔(성문서)으로 분류와 구성이 조금 다르긴 합니다만, 구약의 내용도 예슈아와 그의 제자들이 인용하고 초기 기독교인들이 사용한 유대인들과 동일한 경전을 사용합니다.

 

다른 말로 예슈아의 ‘성경’이 구약이기 때문에 그냥 ‘이상한' 책들로  무시할 수 없는 거죠.

 

성경을 대하는 태도

    성경을 대하는 태도 역시  스스로를 ‘신앙인'이라고 표현하는 부류 안에서도 그룹이 달라집니다.

전 신학을 잘 모르지만 가장 극단적인 좌측에서는 성경의 사실여부에 대한 부정적인 전제를 가지고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반대쪽인 우측에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오류가 없다고 믿습니다.

 

(신학계 밖에선 제가 재밌게 들은 조던 피터슨 같은 경우는 “Meta-Truth”라는 개념으로 애매한 태도를 취하긴 합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이 이야기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엄청나게 많다고 이야기 합니다. 심지어 피노키오를 가지고도 복잡한 인생사를 깊이 있게 설명해낼 수 있으니 성경이든 메소포타미안 신화이든 이 분을 거치면 뭐든 의미있는 해석이 나오긴 합니다.)

 

    제 경우엔 한발짝 물러나서 양 극단진영을 바라보고 가장 합리적인 진실이 무엇인가가 궁금했습니다.

진리라는 단어는 사실 철학적이기도 하고, 종교적인 뉘앙스도 풍기고, 초월적인 단어이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특히 상대주의적 ‘주관적 진리'가 더 중요시 여겨지는 21세기 사회에서는요.

 

하지만 진실의 개념을 적용시키면 조금 다릅니다. 진리가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면, 그 진실은 단서들을 남기는 게 당연합니다. 그게 고고학적, 역사적, 심지어 부분적으로나마 과학적으로 단서를 남기고, 진실을 지지할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말이 됩니다.

    유신론자 학자가 조사한 근거가  그 사람의 유신론적 관점 때문에 가치가 없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만큼, 한 무신론자가 ‘교회’라는 조직에서 겪은 경험을 근거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데이터를 해석한다면, 그 결론이 ‘보다 현대적'이기 때문에 더 진실에 가깝다고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 과연 성경 밖의 근거들은 어떤 게 있을까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원래 관심분야였던 과학과 논리 영역을 거쳐 최근 들어 역사의 영역에 근거들을 찾아 보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To be continued...)

다음글> 1.5 배경지식 (2): about the Bible (tistory.com)

 

1.5 배경지식 (2): about the Bible

근거?     일단 제 전문분야도 아니고, 일반인들이 전문적으로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분야이긴 하지만, 아주 먼 과거에 발생한 일을 검증하려면 결국 고고학의 영역에 뭔가 참고할만한 근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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