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신화(그리스도 신화) 조사 후기 : Uncovering the myth to find the Truth
1. 일반인으로서 감상
지난 한 달 간 짧지 않은 시간을 들여 예수와 평행한다는 신화들을 찾아보고, 예수신화설(또는 그리스도 신화론)의 역사를 살펴봤습니다. 한 달이란 짧은 시간에 다 살펴보기엔 굉장히 많은 인물들이 있었고, 또 1800년대 저자들의 옛날 영어로 쓰여진 저서를 샅샅히 다 살펴보기엔 저서들의 분량이 엄청 났기 때문에 인물 소개와 관심이 가는 주요저서들을 훑어보며 지나갔습니다.
21세기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예수신화설/그리스도 신화론이 어떤 새로운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흥미롭게 조사해봤지만, 이 신화설의 발생은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그 역사을 보자면 200여년 전부터 이미 존재했었고, 오랜 역사를 지닌 거에 비해 주장의 근거를 보면 특별한 고고학적 근거가 있다기 보단 기원을 알고자하는 인류의 단순화를 향한 노력의 산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계에선 쉽게 반박되어 잊혀졌다가 '부활'을 반복하는 가설이었습니다. 주류 학자들은 이런 그리스도 신화론은 '홀로코스트 부정론 (Holocaust Denial)' 급의 '마이너한' 의견이라고까지 합니다. 지금 시기 적절한 표현으로 바꾸자면 하버드 대학의 램지어 교수(John Mark Ramseyer) 의 논문 급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까요..?
*초등학교 교육이 중요한 이유: 그는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으니 일본학교에서 그렇게 배웠겠죠...)
17세기~18세기, 프랑스의 볼니(Voleny) 백작이나 드퓌(Dupuis)의 경우, 혁명을 위한 증오의 대상으로서의 사회계층이 필요했고 그런 정치적 아젠다를 가지고 유래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했습니다. 또 다른 영국 작가 히긴스(Higgins)는 당시 서양인들에겐 신비의 대상이었던 이집트 고대문명에 대한 환상으로 역사적으로 새로운 발견 없이 많은 상상과 연상으로 '종교의 기원'을 찾고자 합니다. 어떤 이는 그 근거를 신화를 연구한 학자의 의견으로 하고, 어떤 이는 고대 동전을 연구한 학자의 의견으로 합니다. 한편 유럽과 중동을 여행하고 공부한 후, 미국으로 이민온 러시아 귀족이 창립한 신지주의(神智主义/Theosophy)에 영향을 받은 작가도 있었습니다. *이 러시아 여성은 '고대 마스터(현자?)들'로부터 신비한 현상을 통해 '메시지'를 받는다고 주장을 했다가 과거 직원을 통해 이런 경험을 위조하고 있다고 의심받고, 영국 심령학회에서 그게 위조가 사실이라고 인증을 하는 등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글로 이 주제를 처음 접하신 분들은 예수신화설의 기원 (1) (그리스도 신화론)을 읽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이런 시도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우리 인류는 과거, 역사 속에서 정체성을 찾아왔고, 주로 무언가의 기원을 알고자 하는 노력에서 발전을 이뤄왔기 때문입니다. 관찰을 통해 패턴을 발견하고 거기서 지식을 얻는 것이 인류가 학문을 얻는 보편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점성술과 천문학, 연금술과 화학이 그랬듯이요.
거의 모든 종교는 종교비교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연 현상에 대한 경이로움, 미지의 영역을 이해하고자 하는 인류의 노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유사성을 비교 분석하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요약된 표 속의 유사성을 근거로 허구와 사실을 구분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합니다. 방대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유사성을 찾는 것은 실존 인물 사이에서도 가능하고, 허구 속의 캐릭터와 실존인물 사이에서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유사성으로 인해 한 존재의 역사적 사실이 취소된다는 주장은 이성적으로 생각해봐도 문제가 있는 논리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되었던 1912년 타이타닉 침몰사건과 1898년 소설 'the wreck of the Titan, Or, Futility' 외에도 역사적 사건 간의 유사성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요약된 내용과 일부 세부내용만 설명해보겠습니다.
당시 뉴욕에서 제일 높은 빌딩의 남쪽 타워 78-80층 사이로 비행기가 충돌합니다. (한국 신문기사)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2011년 '9.11 테러'를 떠올리시겠지만....
1945년에 발생한 B-25 폭격기가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충돌한 사건에 대한 요약입니다.
100-200년이 지난 후, 누군가가 이 사건을 비교하면서 두 사건의 유사성을 들면서 둘다 혹은 어느 한쪽이 허구라고 주장한다면 이건 합리적인 결론일까요?
- 당연히 아닙니다.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 혹은 이제 막 악기를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이 어떤 곡을 듣거나 악보를 보면서 여러 곡들의 유사성을 발견합니다. 예를 들어 곡A , 곡 B, 곡 C를 배우면서 C-G-Am-F로 이러지는 코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 한 패턴만 마스터 했는데도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수백개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느 레벨에서의 유사성을 가지고 어느 한곡이 다른 곡을 표절 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곡을 구성하는 건 단순히 코드 패턴이 아니라 박자(리듬)와 선율(멜로디) 등 다른 요소가 있기 때문이죠. 유사성이 코드 패턴이라고 하면, 디테일이 다른 요소들이고, 그 디테일이 차이를 만듭니다.
분명 인류학적으로 계절의 절기와 태양과 연관된 종교들은 존재합니다. 이집트 신화, 그리스 신화의 신들과 고대 인도 종교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세계관을 살펴봤을 때, 자연이 곧 숭배의 대상이고 신인 이교 세계관 (혹은 힌두교 세계관)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의 경전(구약성경)에 이미 명시적으로 쓰여 있는 여러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를 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5-18 (생략)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우상을 만들어 죄를 짓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남자나 여자나 짐승이나 공중의 새나 땅에 기어다니는 곤충이나 물고기나 그 어떤 모양으로도 우상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19 그리고 하늘의 해나 달이나 별을 보고 매혹되어 경배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들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온 세상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신명기 4:15~19 중)
“So watch yourselves carefully, since you did not see any form on the day the Lord spoke to you at Horeb from the midst of the fire, so that you do not act corruptly and make a graven image for yourselves in the form of any figure, the likeness of male or female, the likeness of any animal that is on the earth, the likeness of any winged bird that flies in the sky, the likeness of anything that creeps on the ground, the likeness of any fish that is in the water below the earth. And beware not to lift up your eyes to heaven and see the sun and the moon and the stars, all the host of heaven, and be drawn away and worship them and serve them, those which the Lord your God has allotted to all the peoples under the whole heaven. But the Lord has taken you and brought you out of the iron furnace, from Egypt, to be a people for His own possession, as today. (Deuteronomy 4:15-20)
그래서 유대교도 초기 기독교도 그리스로마 이교처럼 '신의 형상'을 조각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런 명시된 정보를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재해석을 통해 다르게 해석하면 그건 왜곡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게 유대인들의 디폴트였고 그들의 삶은 소위 율법이라는 것으로 그들의 생활 속에서 문화로서 작용해왔습니다. 그런 그들이 태양신을 섬겼다고 해석하는 건 그저 유대인들의 문화나 유대인들의 성경, 기독교인들의 성경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나온 상상일 뿐입니다.
자연현상, 계절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신을 빌려왔다는 주장 역시 그렇습니다.
그리스로마신화 속의 신을 보면 인간의 모습이 반영되어있습니다. 아니, 초자연적인 능력을 제외하고는 인간이 하는 거의 모든 일들을 하며, 심지어 현대를 살아가는 문명인이라면 꺼려할 근친상간과 속임과 살인 등 부도덕적이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신들은 당시 로마사람들의 문화를 충분히 반영하기도 했을 것이고, 다시 그것이 순환되어 그들이 믿는 신들의 행위(이야기)를 통해 자신들의 욕구를 해소하기도 하며 자기 합리화를 했겠죠. 보편적인 유대인의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될 도덕성을 가진 그리스 신화의 신들을 유대인들이 숭배했다고 주장하는 건 굉장히 설득력이 없습니다.
이런 신화 속의 신에 대한 분석이라면 저도 인류학자들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게 명백합니다.
신화 속의 신들은 인간의 역사적 시공간과 연관되어 있지 않습니다. 역사적 시간대과 상관없이 시대를 초월해서 이야기 속에서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가짜 복음서로 알려진 보병궁복음서(The Aquarian Gospel of Jesus the Christ) 역시 신지학(Theosophy)의 영향을 받은 미국인 "목사" 레비 다울링 Levi H.Dowling가 '계시'를 받아 주장하며 쓰여졌는데, 1인 저자가 계시를 받았다는 미심쩍은 부분을 제하고, 이런 세계관 자체를 비교해봤을 때도 궁극적으로 기독교와 상관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예수불자설 역시 유사성을 근거로 예수가 인도에서 불교 유학을 하고 왔다는 등의 역사학적 근거가 없어 '유사역사학'으로 분류된 아주 흥미로운 소설적 상상을 펼칩니다. 그걸 바탕으로 <맨 프롬 어스 Man from Earth>같은 영화가 만들어졌겠죠. (그리고 시대정신/자이트가이스트에서 주장하는 바를 믿으신 분들은 또 그런 영화를 통해 예수불자설을 믿게 되시겠죠... 안타깝게도..)
신화 세계관에 대한 철학적 비교
좀 더 철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자면 이런 이집트신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믿는 사람들의 세계관과 유대-기독교의 세계관은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존 오스왈트(John Oswalt)의 책 <The Bible among the Myths>에선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 Worldview of continuity : 연속적인 세계관
첫번째 세계관은 철학적 원칙으로서의 연속성을 전제합니다. 모든 사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이 관계적으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이 아니라 존재적으로 서로 속해있다고 주장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의 일부분이며 기본적으로 신과 자연과 인간 사이엔 어떤 구분도 없다는 겁니다. 모두 원칙적으론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신화 속에선 이 신들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자연 현상이 되기도 합니다. 자연은 신성의 일부이고 신 자체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류는 신성/신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차이는 '역할'에 있을 뿐이죠.
현실의 속성에 대한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고대근동 종교들을 바라볼 때 영향을 미칩니다. 보기에 비슷한 것, 소리가 비슷한 것들은 같은 거라는 거죠.
만약 우상(조각/모형)을 나무로 만들면, 이건 자연의 일부로 만들었고, 바알처럼 생겼기 때문에 바알이다. 바알은 태풍과 같이 강하고 생명을 주기도 하고 파괴적이다, 그래서 바알은 태풍이다.
우상 조각에게 한 행위는 바알에게 한 행위이며 본질적으론 하나이기 때문에, 이 조각상에 대한 행위가 태풍에게 한 행위가 된다. 영역상의 구분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신에게 영향을 미치며 신의 영역에 일종의 '통제'가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그 행위가 '마술/마법' 인 거죠. 여러 의식과 행위를 통해 신의 조정할 수 있는 거죠. 인간이 자연현상과 신의 행위에 참여하는 게 가능해집니다.
연속성의 세계에선 심볼 (상징)와 현실 사이엔 구분이 없습니다. 심볼 자체가 현실이고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timeless' 현실이 실현됩니다. 그게 바로 신화 속 세계관의 보편적 특성입니다.
기원전 1-2세기의 에피쿠로스 학파 철학자인 루크레티우스 (Lucretius, 194-53BC)가 이미 그런 종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은 천상의 시스템과 한 해의 다른 계절이 고정 된 질서로 돌아가는 것을 인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신에게 귀속시켜 딜레마를 피했습니다."
"men perceived that the heavenly systems and the different seasons of the year, revolved in the fixed order. and they could not fathom the causes behind this, so they escape the dillemma by attributing everything to the gods.
그리고 예수의 이야기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예수의 이야기는 기록자에 의해 시간과 공간이 한정 됩니다. 예수의 이야기는 그가 한 일이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것이 사실일 경우에만 중요합니다. 그건 반복할 수 없는 인류사의 한 사건 입니다. 예수 이야기는 땅에 비를 내리게 하는 등 신의 영역을 조작한 이야이가 아닙니다.
이 생애 혼돈 속에서 질서를 보장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는 이 영역의 파괴적인 세력들의 번뇌를 안고 있는 영웅을 상징하고 있지 않고, 인간의 '번식력' 혹은 '불임'을 상징하지도 않고, 토지의 비옥함을 대표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모든 인류를 대표하지 않습니다. 신화의 영웅들은 인간의 열망을 대표합니다. 그는 신이지 신과 인간의 성행위를 통해 임신된 신인(神人/demi-God)이 아닙니다.
2. Worldview of Trenscendence : 초월의 세계관
성서 문학 안에서는 '초월'을 볼 수 있습니다. 신은 그가 창조된 피조물과 다르고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지만 이 세상과 같지 않고 본질을 공유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성경은 그 속의 모든 책과 편지 속에서 이런 사상을 유지합니다. 신이 이 세상과 동일시 된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선 고대 신화 속에선 볼 수 없는 현실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있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이런 세계관을 유지하고 있는 건 단일신 종교인 유대-기독교와 이슬람입니다. 그리고 이 세 종교 모두 히브리성경, 구약에서 파생되죠. 바로 그 초월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요.
초월이란건 창조물/피조물과 신 사이에, 신과 자연과 인간 사이에 장벽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우상은 신이 아닙니다. 신은 자연과 하나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들어진) 우상(조각)에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주술이나 의식로 조종할 수 없습니다. 신은 우리가 사는 영역을 초월하여 존재합니다.
성경 속의 이야기는 인류가 신을 거역하는 대하소설 같습니다. 그리고 신의 뜻과 인간의 의지의 분투/투쟁/몸부림 속에서 역사가 탄생합니다.
흥미롭습니다. 기원전에 살았던 역사가가 이미 당시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를 꿰뚫어 봤습니다. 현대 과학이나 포스트 모더니즘 인류학이 발견한 게 아니었습니다.
3. 전문가의 답변
한편 기독교 철학가 변증학자 윌리엄 크레이그는 '기독교가 이교 신화에서 파생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Q&A에서 아래와 같이 답변했습니다.
(이하 자체번역) 종교의 역사학파/종교사학파 (宗敎史學派:History of Religion School/religionsgeschichtliche Schule)의 전성기 때 비교종교학의 학자들은 다른 종교의 '평행/유사점'들을 수집했습니다. 그리고 일부는 (예수의 부활을 포함한)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다른 신화의 영향인 것처럼 설명하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복음서들을 설명하는데 있어 신화가 중요한 카테고리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학자들은 이교 신화들은 나사렛의 예수를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기엔 부적합한 해석적 맥락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래된 '종교사학파'의 몰락/붕괴는 주로 두 가지 이유로 발생했습니다.
The collapse of the old History of Religions school took place for primarily two reasons.
(1) 첫째, 학자들은 유사/평행으로 주장하는 것들이 비논리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First, scholars came to realize that the alleged parallels are spurious.
고대 세계는 영웅과 신들의 신화로 가득했습니다. 종교비교학과 문학비교학을 다룰 땐 유사성과 차이에 대해 민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곡과 혼동이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안타깝게도 기독교인들의 믿음/신앙에 유사성(평행설)을 제시한 이들은 이런 (유사성과 차이에 대한) 민감함을 발휘(적용)하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The ancient world was a virtual cornucopia of myths of gods and heroes. Comparative studies in religion and literature require sensitivity to their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or distortion and confusion inevitably result. Unfortunately, those who adduced parallels to Christian beliefs failed to exercise such sensitivity.
예를 들어, 처녀 탄생의 이야기,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수가 처녀 임신(을 통해 세상에 왔다는) 이야기죠. 이 이야기가 이교(신화)와 유사하다고 주장하는 평행설을 보면 신들이 인간과 같은 형태의 몸으로 인간 여성과 성관계를 맺고 (헤라클레스와 같은) 신과 인간 사이의 자손을 낳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복음서에서 예수가 성관계 없이 처녀를 통해 탄생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이야기입니다. 복음서의 예수의 처녀 임신 이야기들은 고대 근동에 유사한 바가 없습니다."
Take, for example, the story of the Virgin Birth, or, more accurately, Jesus' virginal conception. The alleged pagan parallels to this story concern tales of gods' assuming bodily form and having sexual intercourse with human females to sire divine-human progeny (like Hercules). As such these stories are exactly the opposite of the Gospel story of Mary's conceiving Jesus apart from any sexual relations. The Gospel stories of Jesus' virginal conception are, in fact, without parallel in the ancient Near East.
혹은 복음서 중 제게 가장 흥미로운 사건인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를 고려해봅시다.
Or consider the Gospel event of most interest to me:
평행을 주장하는 사건들은 (1) 헤라클레스나 로물루스와 같이 주로 영웅들이 (사후) 천국에 올라갔다는 가정(가설)과 신성화로 된 신격화(apotheosis) 이야기입니다. (2)다른 부류는 티아나의 아폴로니오스, 엠페도클레스(Empedocles)와 같이 영웅이 더 높은 (천상)세계로 사라졌다는 '사라지는' 이야기입니다. (3) 또 다른 분류로서는 타무즈, 오시리스, 아도니스와 같이 식물이 건기에 죽고 우기에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작물주기의 계절적 상징입니다. (4) 어떤 이야기는 쥴리어스 시저와 시저 어구스투스의 경우와 같이 황제 숭배의 정치적 표현이었습니다.
Jesus' resurrection from the dead. Many of the alleged parallels to this event are actually apotheosis stories, the divinization and assumption of the hero into heaven (Hercules, Romulus). Others are disappearance stories, asserting that the hero has vanished into a higher sphere (Apollonius of Tyana, Empedocles). Still others are seasonal symbols for the crop cycle, as the vegetation dies in the dry season and comes back to life in the rainy season (Tammuz, Osiris, Adonis). Some are political expressions of Emperor worship (Julius Caesar, Caesar Augustus).
이런 것들은 유대인이 생각하는 죽음에서 부활하는 것과 유사하지 않습니다.
None of these is parallel to the Jewish idea of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근동문학 비교 전문가인 David Aune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 그리스 로마 전기에선 [부활 전통]과 유사성이 없다"
David Aune, who is a specialist in comparative ancient Near Eastern literature, concludes, "no parallel to them [resurrection traditions] is found in Graeco-Roman biography" ("The Genre of the Gospels," in Gospel Perspectives II, ed. R. T. France and David Wenham [Sheffield: JSOT Press, 1981], p. 48).
사실, 많은 학자들은 제대로 얘기하자면 죽었다가 살아나는 신의 신화가 있는 지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계절의 상징으로서 신화인 오시리스 신화 속에서 오시리스(Osyris)는 다시 살아나는 게 아니라 죽은 자들의 영역에서 계속해서 존재할 뿐이다. 최근의 근거에 대한 검토 후, T.N.D 메팅거(Mettinger)는 "1930년대부터 '죽었다 살아나는 신들'은 죽었다가 돌아오지 않거나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는 결과에 대한 의견일치에 도달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멸종된 종'의 남은 구성원으로 간주된다."
In fact, most scholars have come to doubt whether, properly speaking, there really were any myths of dying and rising gods at all! In the Osiris myth, one of the best known symbolic seasonal myths, Osiris does not really come back to life but simply continues to exist in the nether realm of the departed. In a recent review of the evidence, T. N. D. Mettinger reports: "From the 1930s. . . a consensus has developed to the effect that the 'dying and rising gods' died but did not return or rise to live again. . . Those who still think differently are looked upon as residual members of an almost extinct species" (Tryggve N. D. Mettinger, The Riddle of Resurrection: "Dying and Rising Gods" in the Ancient Near East [Stockholm, Sweden: Almquist & Wiksell International, 2001], pp. 4, 7).
메팅거 역시 두문지, 바알, 멜카트르 등의 신화에서 죽고 다시 살아나는 신화가 존재한다고 믿지만, 그런 상징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믿은 예수의 부활과는 아주 다르는 것을 인지합니다.
"Mettinger himself believes that myths of dying and rising did exist in the cases of Dumuzi, Baal, and Melqart; but he recognizes that such symbols are quite unlike the early Christian belief in Jesus' resurrection:
죽었다 사라지는 신들은 계절의 주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죽음과 귀환은 식물 생애의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봅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반복되지 않고 계절과 상관없는 일회성 사건입니다...... 내가 아는 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당시 주변국가의 죽었다 살아나는 신화를 기반으로 탄생한 것이라는 실질적인 증거/근거는 없습니다. 유대인들의 부활에 관한 믿음을 배경으로 연구 했을 때,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종교의 역사 중 고유한 특성을 함유합니다. 그 수수께끼는 유지 됩니다. "
The dying and rising gods were closely related to the seasonal cycle. Their death and return were seen as reflected in the changes of plant life. The death and resurrection of Jesus is a one-time event, not repeated, and unrelated to seasonal changes. . . . There is, as far as I am aware, no prima facie evidence that the death and resurrection of Jesus is a mythological construct, drawing on the myths and rites of the dying and rising gods of the surrounding world. While studied with profit against the background of Jewish resurrection belief, the faith in the death and resurrection of Jesus retains its unique character in the history of religions. The riddle remains (Ibid., p. 221).
(2) 두번째로 기독교인들의 예수에 대한 믿음의 기원에 대한 해석으로 이교 신화를 제시한 종교사학파는 이교 신화와 기독교인들의 예수에 대한 믿음 사이엔 인과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몰락 합니다.
Second, the History of Religions school collapsed as an explanation of the origin of Christian beliefs about Jesus because there was no causal connection between pagan myths and the origin of Christian beliefs about Jesus.
예를 들자면, 부활입니다. 유대인들은 계절적 신에 대해 익숙했고 그것들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세기 팔레스틴에서 죽었다 살아나는 신들의 컬트에 대한 흔적은 없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영광과 불멸을 위한 부활은 모든 죽은 이들이 모두 부활하는 세상의 종말 전까지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의 초기 제자들이 '죽었다 살아나는' 계절적 신들의 이교 신화를 들었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를 갑자기, 그리고 신실하게 믿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Take, for example, the resurrection. Jews were familiar with the seasonal deities mentioned above and found them abhorrent. Therefore, there is no trace of cults of dying and rising gods in first century Palestine. For Jews, the resurrection to glory and immortality would not take place until the general resurrection of all the dead at the end of the world. It boggles the imagination to think that the original disciples would have suddenly and sincerely come to believe that Jesus of Nazareth was risen from the dead just because they had heard of pagan myths about dying and rising seasonal gods.
만약 그들이 원전(1차 자료)를 인용한다면 보게 되는 것에 놀랠 거라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자면, 제가 로버트 프라이스(Robert Price)와 예수 부활에 대한 토론을 했을 때, 그는 예수의 치유 기적이 아스클레피오스(의술의 신)의 신화적 치유이야기에서 파생된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원전에서 그런 유사성을 보이는 문장을 읽어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했을 때, 그가 읽어준 이야기는 예수의 복음 이야기 속의 치유 기적들과 유사성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게 그런 이야기들이 계보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최고의 증거였습니다.
If they ever do cite a primary source passage, I think you'd be surprised what you find. For example, in my debate on the resurrection with Robert Price, he claimed that Jesus' healing miracles were derived from mythological healing stories like those concerning Asclepius. I insisted that he read to us a passage from the primary sources showing the purported parallel. When he did so, the tale he produced bore no resemblance whatsoever to the Gospel stories of Jesus' healing miracles! It was the best proof that the stories were not genealogically related."
전 직접 여러 신화들을 비교해보고 예수 신화설 (혹은 그리스도 신화론)의 역사에 대해 조사해본 후, 윌리엄 크레이그의 글을 접하게 되었는데 저런 분석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됩니다.
4. 그리스로마 이교도들과 살아갔던 초대 교회 사람은 어땠을까요?
우리는 서기 1세기를 살아간 초대 기독교인들의 기록을 통해 그들이 그리스로마의 이교신앙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었는 지 궁금해져 찾아봤습니다.
작자 미상의 '마테테스의 디오그네투스 에게 보내는 서신' -The Epistle of Mathetes of Diognetus (Πρὸς Διόγνητον Ἐπιστολή) 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밑줄 부분만 번역) 잘 봐 - 눈으로만 말고, 당신의 지성으로. 당신들이 신들이라고 부르고 신성하다고 여기는 것들의 모양과 재료를.... 하나는 석공이, 하나는 주조공이, 세번째 것은 은세공인(silversmith)이, 네번째 것은 도공(도예가)가 만든게 아닌가? 지금까지 장인들의 기술이 저런 형태를 주었네. ..(생략).. 우리가 저것들이 신성하다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에 우리를 그렇게 싫어하는 게 아닌가?"
[T]ake a good look—with your intelligence, not just with your eyes—at the forms and substances of those objects which you call gods and hold to be divine. . . . Was not one made by a stonecutter, another by a brass founder, a third by a silversmith, a fourth by a potter? And up to the present moment when the skill of those craftsmen gave them their present forms, was it not just as practicable—indeed, is it not just as practicable even now—for every one of them to have been made into something quite different? Moreover, supposing that ordinary pots and pans of similar material were put into the hands of those craftsmen, could they not be turned into gods like these?. . . Do you really call these things god and really do service to them? Yes, indeed you do; you worship them—and you end up becoming like them. Is it not because we Christians refuse to acknowledge their divinity that you dislike us so?
-The Epistle of Mathetes of Diognetus (Πρὸς Διόγνητον Ἐπιστολή)
당시 로마에서 유행하던 '종교'에 동조하지 않고 거부한 기독교인들은 세간으로부터 '무신론자'라는 혐의 받습니다.
서기 2세기, 성 유스티노(저스틴 St. Justin / Justinus)는 '첫번째 변증 First Apology'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무신론자'라고 불립니다. 당신들이 신들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해선 우리는 그렇게 선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참된 진짜 신, 정의와 절제와 다른 선행의 아버지가 되시고, 악이 없는 분에 대해서는 아닙니다."
So we are called atheists. Well, we do indeed proclaim ourselves atheists in respect to those whom you call gods, but not in regard to the Most True God, the Father of righteousness and temperance and the other virtues, who is without admixture of evil.
5. 문학 학자 C.S 루이스의 평
제가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인 C.S 루이스는 신화를 비롯한 많은 문학 작품을 읽고 연구하고 가르친 옥스포드의 교수이자 작가입니다.
<예기치 못한 기쁨 (Surprised by Joy)>에서 그는 이교 신화와 기독교의 유사성이 자신의 무신론에 기여를 했고, '기독교는 많은 신화 중의 하나가 아닌가?'라는 질문으로 고민했다고 합니다.
1916년 18세에 친구 아서 그리브스(Arthur Greeves)에게 쓴 편지에서 그의 시선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내 종교적 관점에 대해 물었지? 난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 것 같아. 모든 종교엔 절대로 증거가 없고 철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도 기독교가 최고는 아니야. 모든 종교는 모든 신화에 인간이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인 창작품에 불과해.
종종 위대한 사람이 사후에 신처럼 여겨지지, 헤라클레스나 오딘처럼. 히브리 철학자 예슈아 (지저스로 그 이름이 전락한)가 신으로 여겨지고, 컬트가 생기고, 히브리 민족의 야훼 경배랑 연결하면서 기독교가 생긴 거지. 많은 신화 중, 우연히 우리가 (그런 문화 배경에서) 자라게 된거지"
You ask me my religious views: you know, I think I believe in no religion. There is absolutely no proof for any of them, and from a philosophical standpoint Christianity is not even the best. All religions, that is, all mythologies to give them their proper name, are merely man’s invention.
Often too, great men we regarded as gods after their death - such as Hercules or Odin: thus after the death of a Hebrew philosopher Yeshua (whose name we have corrupted into Jesus) he became regarded as a god, a cult sprang up, which was afterward connected with the ancient Hebrew Yahweh worship, and so Christianity came into being - one mythology among many, but one that we happened to be brought up in.
1926년 5월, C.S 루이스는 그런 시선을 가지고 옥스포드에서 교직을 하다가 <반지의 제왕>의 작가인 J.R.R 톨킨을 만나게 됩니다. 톨킨은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이야기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초월한 '궁극적인 현실'을 암시한다고 주장합니다.
절친이 된 J.R.R 톨킨 (반지의 제왕 작가)과의 오랜 우정 속에 대화를 주고 받으며 C.S루이스는 조금씩 생각이 변합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성경의 복음서를 샅샅히 읽어본 후, 그의 문학적 판단력을 통해 그 이야기가 신화 이상의 것이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지금의 나는 문학 비평의 경험을 너무 많이 쌓아서 복음서가 신화라고 판단할 수 없네. 복음서들은 신화의 '맛'이 없어. "
“I was by now too experienced in literary criticism to regard the Gospels as myths. They had not the mythical taste."
당시의 성경 속의 기적에 대해 '신화'라고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성서비평학계에 대해 그들이 신화와 전설을 얼마나 (많이) 읽어봤는지 궁금하다며 그는 이런 의견을 남겼습니다.
" 난 평생 시와 사랑이야기, 환상 문학(예언), 전설과 신화를 읽어왔네. 난 그런 이야기가 어떤 지 아주 잘 알아. 하지만, 이것(복음서의 예수 이야기)과 비슷한 게 없다는 걸 알아"
“I have been reading poems, romances, vision literature, legends and myths all my life. I know what they are like. I know that not one of them is like this.”
신화와 문학을 사랑했던 C.S 루이스는 신화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 독특한 시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의 중심은 사실이기도 한 신화이다. "
The heart of Christianity is a myth which is also a fact
"오래된 신화 속의 죽는 신이 신화가 되는 것을 멈추지 않은 채, 전설과 상상 속의 '천상'에서 이 땅의 역사로 내려왔다. 그 사건은 특정한 날에 특정한 장소에 정의될 수 있는(확인가능한) 역사적 결과를 통해 일어났다. 언제 어디서 죽었는 지 모르는 발데르(발더) 혹은 오시리스에서 폰티우스 필라투스(본디오 빌라데)의 명령 하에 십자가에 못박힌 역사적 인물로.
(역사 속의) 사실이 되면서 신화가 되는 것을 멈추지 않은 것이 바로 기적이다. ...(생략).. 진정한 신(God)은 신화 속의 신 (우상/god)보다 더 위대하다: 그리스도는 발데르(발더)보다 더 크다. 우리는 우리의 신학 속에 신화적 빛이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안된다. 우리는 소위 "이교 예수들(Pagan Christs)"과 소위 "평행/유사"에 긴장할 필요가 없다. 그런 것들은 존재하는 게 맞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The old myth of the Dying God, without ceasing to be myth, comes down from the heaven of legend and imagination to the earth of history. It happens—at a particular date, in a particular place, followed by definable historical consequences. We pass from a Balder or an Osiris, dying nobody knows when or where, to a historical Person crucified (it is all in order) under Pontius Pilate.
By becoming fact it does not cease to be myth: that is the miracle. …God is more than a god, not less: Christ is more than Balder, not less. We must not be ashamed of the mythical radiance resting on our theology. We must not be nervous about “parallels” and “Pagan Christs”: they ought to be there—it would be a stumbling block if they weren’t.”
C.S Lewis - 'Myth Became Fact' (사실이 되어버린 신화)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단순히 말하자면 '진실된 신화 (사실이 된 신화)' 입니다. 다른 신화들과 비슷하게 작용하지만 그 엄청난 차이는 실제로 일어났다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내용을 같은 방식으로 받아드리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겁니다, 하나는 신의 신화이고, 하나는 인간의 신화라는 걸 기억하며. 예를 들어 이교신화는 신이 시인을 마음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신 거고, 기독교는 신이 우리가 '진짜인 것들/실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 겁니다."
“Now the story of Christ is simply a true myth: a myth working on us the same way as the others, but with this tremendous difference that it really happened: and one must be content to accept it in the same way, remembering that it is God’s myth where the others are men’s myths: i.e., the Pagan stories are God expressing Himself through the minds of poets, using such images as He found there, while Christianity is God expressing Himself through what we call 'real things'.”
신화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이다 - 라는 단순한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만약 기독교인, 천주교인들이 믿는 성경 속의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어떤 흔적을 남겼을 거라고 추측해봅니다. (언젠가 시간이 나면 그 역사성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보고 글을 남겨보겠습니다.)
전 진실을 찾는 방법 중 하나가 둘러쌓인 거짓말들을 하나 하나 걷어내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지문답형에 적용하는 배제법이랄까요?) 아마 그래서 이 예수신화설, 그리스도 신화론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적어도 이 예수 이야기가 그리스로마 신화의 짝퉁이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 시리즈를 읽어주신 분들도 적어도 이 페이크뉴스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게 되는 기회였으면 좋겠습니다.
※ 안티기독교, 안티예수인 분들께서 읽어주셨다면, 적어도 기독교에 대한 거짓말 하나는 알게 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싫어하더라도 정확하지 않은 정보에 속아서 싫어하는 것보다는 제대로 알고 싫어하는게 좋잖아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