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노예 제도를 지지하나요? (1부) feat. 스티븐 핑커
성경이 노예 제도를 지지하나요?
Does the Bible condone slavery?
"(생략)...성경은 사실 기나긴 폭력의 찬미나 다름없다.
성경에 묘사된 세상은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혼비백산할만큼 야만스럽다. 사람들은 친족을 노예로 부리고 겁탈하고 죽였다...(생략)...성경 작가들은...(중략)...노예제를 그릇된 일로 보지 않았다.
당시에는 관습과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에 비하면 사람의 목숨 따위는 중요한 가치가 아니었다."
출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2014)(원제: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스티븐 핑커, (번역: 김명남) | 사이언스북스
한 네이버 블로거가 발췌한 글을 통해 접하게 된 스티븐 핑커의 글입니다.
※참고: 이 분이 발췌하는 분량 (여러 문단~한 페이지 정도의 분량)의 사용은 인용이나 발췌의 범주를 넘어서 저작권 침해에 속하기 쉽습니다.
스티븐 핑커는 MIT에서도 가르치고 현재는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부에 속한 언어심리학자, 뇌인지과학자입니다. 언어학도로서 제가 참고할만한 많은 연구를 하기도 했죠.
최근엔 <지금 다시 계몽 (원제: Enlightment Now: The Case for Reason, Science, Humanism, and Progress> 이란 책을 통해 인류의 역사가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습니다. 그런 유명한 석학의 책에서 묘사된 성경의 요약본과 그 평가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부터 2020년 많은 토론 영상을 보고, 블로그를 오픈하며 "오해"라는 것에 촛점을 맞춰 세상을 바라본 지난 1년. 많은 오해는 부분적 사실과 얕은 이해에서 비롯된다는 걸 발견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런 건 아닐까 싶어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1. 무신론자의 독서법과 논리적 오류
(1) 성경, 특히 구약에 인류의 잔혹사가 기록되어 있는 건 사실 입니다.
하지만 어느 문학 작품에 살육이 기록되어 있다고 그 저자가 살육을 지지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족한 독해력에 근거한 잘못된 독서법입니다. 종교인들에게 소위 '하나님 말씀'이라고 불린다는 이유로 성경이 어떤 책인지에서 그 속성에 대해 오해한 것에서 비롯된 왜곡된 시선이 느껴집니다.
엄밀히 말하면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은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고 그로 인해 존재하는 선택편향(selection bias)이 따라 옵니다.
※스티븐 제이굴드(Stephen Jay Gould) <인간에 대한 오해> 참고
스티븐 핑커의 문제를 요약하자면 여러 논리적 오류 중 체리 피킹 (Cherry Picking)으로 만들어낸 허수아비 때리기 (Straw man fallacy) 에 속합니다.
성경은 약 1400여년에 걸쳐 약 40명의 저자에 의해 쓰여졌고 여러 문학 장르로 구성된 책들을 한 권으로 편찬한 되어 있습니다.
그런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첫 등장부터 선택권(자유의지)을 부여받은 존재입니다.
일단 에덴동산이 지구상의 실재한 장소인지, 아담과 하와가 실화인지 논하는 것은 차치하고, 기독교 내러티브를 보면 첫 인류에게는 선택이 주어집니다. 신이 준 명령을 따를지, 스스로 선과 악을 정하는 존재가 될 것인지, 그리고 그 두 사람은 '선택'을 합니다.
성경에는 신의 의도에 반하여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끊임 없이 죄악을 선택하는 인류에 대한 기록이 있고, 그 중간 중간 선지자라는 사람을 통해 신은 자신의 의도를 전합니다. 그리고 그런 인류를 신이 어떻게 구원하고 심판하는 지를 역사 속에 실재한 사람들을 통해 기록한 것이 성경이죠.
또 하나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분명 역사 속에서 침략과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한 건 강대국인 이집트 입니다. 성경 속에선 히브리 민족을 노예로 삼고, 태어나는 남자아이들을 죽이는 것 역시 이집트죠.
하지만 왜? 이집트의 악행에 반감을 갖는 것 대신 내러티브 속의 주인공에게 반감을 갖기를 선택하는 걸까요? <신데렐라>를 읽을 때 계모와 의붓언니가 맞게 되는 결말을 안타까워 하고, <어벤져스>를 보면서 타노스 응원하는 격인 건 아닐까요?
(2) 스티븐 핑커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지금 다시 계몽>을 발표한 후 진행되었던 토론 영상 Munk Debate을 유튜브에 발견하여 들어봤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과 <티핑 포인트> <아웃라이어> 등 202년까지 발표한 6권의 책 모두 뉴욕타임즈의 베스트셀러에 오른 말콤 글래드웰 (혹은 맬컴 ~)(Malcom Gladwell)이 스티븐 핑커와 Matt Ridley 와 대립하는 입장으로 토론이 이뤄졌습니다.
알랭 드 보통은 클로징 멘트에서 스티븐 핑커의 주장에 대해 이렇게 묘사합니다.
훌륭한 과학자들은 과학의 한계를 인지하고, 인문학과 함께 인간지성의 복잡성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사람은 새로운 종의 과학자입니다.
자신과 자신의 연구실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자만하며 2000년 넘는 인문학과 종교, 그리고 과학적 방법론의 바깥에 있는 모든 것들의 통찰력을 버립니다(무시합니다.)
이건 굉장히 환원주의적이고 아주 위험합니다.
[원문] The great scientists have known their limitations have worked together with humanities, to understands the complexities of human mind.
What you have in front of you, ladies and gentlemen, is a specimen of new kind of scientist, who is so cocksure of what he and his lab can do, that he has discarded, 2000 years of insights of humanities and religion, and anything that outlies of the scientific method.
And this is highly reductive, and highly dangerous.
※인문학을 무시하는 듯한 과학주의적 태도에 꽤 흥분한 상태
말콤 글래드웰은 핑커가 제시한 10개의 영역의 진보에 대해 인정하지만 그건 포인트가 아니라고 합니다.
과학의 발전을 통해 높아진 핵무기의 위험 등에 대해서는 어떤 피드백을 내놓지 않으면서 과학의 발전을 통해 이뤄낸 부분만 선별적으로 이야기 한다는 점(cherry picking)을 지적합니다.
핑커씨는 우리가 만든 발전에 대해 10가지 영역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그들이 말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건 요점을 벗어났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대인관계적 위험은 줄였지만, 실존적 위험도 증가시켰습니다. 우리가 (스티븐 핑커)의 제안에 투표하려면 이 절충안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원문] Mr. Pinker gave you 10 areas in which we have made that kind of progress, Matt really gave you more, everything they said is TRUE. But it's beside the point. At the same time as we have reduced those interpersonal risks, we have increased our existential risks. And for you to vote for this proposition, you have to believe that trade-off, leaves us better off. And it doesn't.
벤 샤피로와 조던 피터슨은 이 토론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지금, 다시 계몽>에서 계몽주의가 이뤄낸 유익한 장점은 당연히 많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의 실패와 1,2차 세계 대전 등이 계몽주의 이후에 발생한 인류의 참상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믿을 수 없다.
그가 제시하는 데이터가 선별적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성경이 '폭력의 찬미', '노예제도 지지', '관습과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 ?
스티븐 핑커의 책에서 긴 문장으로 요약된 악마의 편집본에서 다룬 여러 주장 중 하나만 제대로 설명하려고 해도 시리즈물이 탄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래와 같이 일련의 질문들에 대해 찾아봐야하기 때문이죠.
- 성경 안에선 도대체 어떻게 적혀 있는 건가?
- 그 단어의 원어는 무엇이면 이 단어는 제대로 번역되었는가?
- 성경에 '노예Slave'로 번역된 단어는 현대인이 생각하는 노예와 같은 뜻으로 사용됐는가?
- 고대 이스라엘의 문화는 어땠는가? 고대근동 지역의 문화는 어땠는가?
아무튼 스티븐 핑커의 잘못된 독해로 시작된 오해는 제외하고, 일단 저 노예제도에 대해 조사해보고자 합니다.
2. 고대 이스라엘의 עֶבֶד [ebed / eved /에베드/아베드] 노예/종?
-Slave? Servant? 노예? '일꾼', '숙식 제공을 받는 6년 계약 만기 근로자'
일단 책에서 원서에서 SLAVE, 번역서에서 노예로 번역된 단어를 마주할 때,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런 걸 겁니다.
고대의 강대국 이집트야 전쟁을 하며 영토를 넓히고 전쟁포로들이 노예가 되어 강제노동을 했겠죠.
영국은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납치해다가 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해서 '노예 무역' (Trans-Atlantic Slave Trade)를 했죠. 영국의 식민지로 시작된 미주 대륙의 정착민 사회에서도 그런 노예제도가 유지되어 미국 남북전쟁 (American Civil War)무렵까지도 흑인들은 '인간 이하 (sub-human)'으로 취급 받고, 전후에도 평등한 인권을 인정 받기 위한 길고 긴 투쟁이어져 왔습니다.
아시아 문화권에 사는 우리들에겐 드라마 <추노> 에서 나오는 신분상승이 불가능한 노비(奴婢)로 다가올 수 있겠군요.
하지만 고대근동지역, 특히 주위 국가들과 달리 이상한(?) 계시를 받아 율법이라는 것을 지키도록 명령 받은 히브리 민족, 그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노예'라고 기록한 것은 어떤 걸 뜻하는 걸까요?
일단 단어의 원어를 살펴봅시다.
(1) 언어학적 디테일
우선 '노예'로 번역된 단어의 히브리어는 עֶבֶד [ebed / eved] 이고 그 어원은 일하다의 뜻인 성경에서 עָבַד[aw-bad']에서 유래합니다.
NASB (New American Standard Bible)에선 353번 servants, 332번 servant로 번역되었고, KJV 성경에선 단 2번만 노예라는 단어로 번역됐죠. (원래 번역은 너무 어려운 작업이고 다른 문화권의 한 언어를 100% 일치하게 번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천진난만한 생각입니다.)
다른 플랫폼에서 사용하기 위해서 이미지로 정리해봤습니다.
(2) 성경에 나온 율법에 관한 구절들로 요약해본 '노예'(혹은 '종') 의 인권
일단 성경의 기조는 '모든 인간이 신의 형상(צֶלֶם / image, likeness)'에 따라 창조 되었다고 합니다. 고대 이집트나 고대 인도에서는 오직 왕족 (혹은 귀족)만 신과 관련된 피조물이라고 하는 것과 대조됩니다.
성경의 초반부터 약소국인 히브리민족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나오는데, 이집트에서 탈출한 후 받은 명령(법)을 봅시다.
보다 많은 구절들, 해석이 더 어려운 구절들도 있지만, 세세히 다음 글에서 하기로 하고, 스티븐 핑커의 '체리 피킹'으로 생긴 오해를 풀고 공평한 시작점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줄 내용으로 시작해 봅니다.
"누군가를 납치하거나 팔거나하면 죽는다 (사형) - 출애굽기 21:16
“Now one who kidnaps someone, whether he sells him or he is found in his possession, shall certainly be put to death.
(Exodus 21:16)
일단 이 구절만으로도 영국이나 미국에서 히브리 민족의 모세오경의 법을 가지고 살았더라면, 노예제도가 활성화 될 수 없었겠죠. (다 사형..?)
"너희들도 이집트에서 이방인으로 살다왔으니 이방인들을 억압하거나 학대/괴롭히지 말아야 한다"
- 출애굽기 22:21
“You shall not oppress a stranger nor torment him, for you were strangers in the land of Egypt.
(Exodus 22:21 NASB)
일단 자국민이나 타국민이든 구분없이 억압과 학대를 명시적으로 금지 받습니다.
더 뒤에서 나오는 신명기라는 책 (모세의 설교집)에서는 출애굽기에서 받은 명령에서 한 단계 레벨이 올라갑니다.
"(신은) 고아와 과부를 위해 정의를 실행하고 이방인들을 사랑한다, 그들에게 음식을 주고 옷을 줘라.
그렇게 너희는 너희도 이집트에서 이방인으로 살았으니 이방인을 사랑하여야 한다. 이방인에게 사랑을 보여줘라."
(신명기 10:19) ※ 신의 '성격'이 드러나는 구절 속 문맥을 위해 18절 추가
He executes justice for the fatherless and widow, and He loves the foreigner, giving him food and clothing. So you also must love the foreigner, since you yourselves were foreigners in the land of Egypt. So show your love for the stranger, for you were strangers in the land of Egypt.
(Deuteronomy 10:18-19)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에서는 노예가 도망 갈 경우, 주인에게 돌아가거나, 아니면 처형 당해야 된다고 적혀있죠. (출처: 예일대학교 아발론 프로젝트 | 16)
16. If any one receive into his house a runaway male or female slave of the court, or of a freedman, and does not bring it out at the public proclamation of the major domus, the master of the house shall be put to death.
-CODE OF LAWS -
이런 구절들과 노예에 관한 세부 구절들 (다음 글에서 상세히 다룰 예정)을 통해 확인해본 결과, 소위 '노예'로 번역된 이들의 인권 (혹은 노동 계약 조건)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3. 노예들의 성경 SLAVE BIBLE
2019년 NBC News에서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유지되던 시절 사용되었던 '노예들의 성경'에 대한 보도가 있었습니다. 1807년에 처음 출판된 이 성경은 총 1,189장 중 다수의 내용이 삭제되어 232 장(chapter)만 남겨진 편집된 성경입니다. 이 성경에선 노예들이 평등을 주장하거나 주인들에게 반항하는 걸 부추길 만한 내용들은 삭제되었습니다. 히브리 민족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킨 모세의 이야기 편집되서 없고, 요셉이 노예생활을 한 건 남겨둡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사회계층과 상관없이 예수 안에서 인간의 평등을 얘기하는 구절 역시 삭제합니다.
There is neither Jew nor Greek, there is neither bond nor free, there is neither male nor female: for ye are all one in Christ Jesus” (Galatians 3:28)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독교의 성경이 노예제도를 지지 한다면, 왜 당시 노예주들은 성경을 이런 식으로 편집했을까요?
이 '노예 성경'의 존재는 당시 종교인들이 성경을 악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운 역사를 보여주는 반면, 성경의 가르침 자체는 노예들에게 평등의 개념을 심어줄 수 있다는 걸 우려했다는 점에서 역설적 반증이 됩니다.
‘Slave Bible’ Removed Passages To Instill Obedience And Uphold Slavery | NBC Nightly News
※ 이 '노예 성경(Slave Bible)'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은 분들은 history.com 의 기사를 남겨드립니다.
다음 편에 성경이 노예 제도를 지지한다고 하며 사용되는 구절들에 대해 세세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물론, 전 전문가가 아니니깐 전문가들의 강의와 인터뷰를 대거 인용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