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의심의 해석학 : doubt your doubts
#1 LENS
사회학을 공부하신 분들은 이런 믿음이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심리학을 공부하신 분들은 불안한 삶 속에서 종교를 통해
심리적 위안을 얻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정치학을 공부하신 분들은 마르크스의 이론을 참고하여 권력통제의 수단으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철학을 공부하신 분들은 쉽게 잘못 인용되고 있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통해
신이 필요없어진 이 시대를 설명하려고 하실 수 있구요.
음악을 좋아하시는 비틀즈의 팬이라면 존 레논의 ‘imagine’의 가사를 떠올리며
종교가 없는 세상이 평화로운 세상이라고 생각하실수도 있겠네요.
진화론적인 관점에선 종교가 인류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현대사회까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고 해석하실 수 있겠구요.
경제학을 배우신 분들은 종교와 비지니스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종교를 사업으로 보실 수도 있겠네요.
과학을 중시하는 분들은 과학 수준이 낮은 과거에 살아온 사람들의 전통이
문화처럼 자리 잡아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주과학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광활한 우주에서 푸른 점에 불가한 작은 지구 위의
훨씬 더 작은 점, “우주먼지”인 우리 인간들은
어차피 이 우주를 알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구요.
한편, 인지과학 계에선 또 신기한 발견을 합니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마치 프로그램이라도 있는 것처럼 신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인다는 점을요.
("Unconscious learning underlies belief in God, study suggests", Georgetown Univ. Medical Center | ScienceDaily 기사 링크)
(2007 paper in Developmental Science by Paul Bloom, “Religion is natural" | evollutionnews.org 링크)
위의 모든 학문들은 하나의 관점에서 바라본 종교를 이야기합니다.
모두 각자의 ‘안경’을 통해 종교를 바라보고 해석합니다.
각자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 하지만 이 관점은 모두 한가지에 동의 합니다.
인간이 신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거라고.
분명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은 존재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다시 객관적인 사실이란 걸 생각해보면
A의 존재여부는 우리의 의견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 것과 상관없이 존재 하거나 존재하지 않죠.
우리가 만들어낸 신과 상관없이 객관적인 신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습니다.
종교가 세상 속 미지의 영역을 해석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왔다고 본다면,
다른 모든 학문도 역시 세상을 해석하는 도구라는 점에선 동일합니다.
#2
우리는 과학이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과학의 한계는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은 왜 파란색일까? 라는 질문에 과학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 있지만,
그 답변은 자세히 생각해보면 WHY의 답변이라기보단 HOW의 답변인 경우가 많습니다.
과학은 왜 물이 끓고 있는지 설명해줄 수 있지만, '차를 마시고 싶어서' 라는 답변을 해주지 못합니다.
도덕적 옳고 그름, 무언가의 가치는 과학적으로 가늠할 수 없구요.
과학은 어떤 병에 걸린 사람을 고치게 할 수 있지만
그 과학을 이용하여 사람을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도록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과학은 가치중립적입니다. 과학 그 자체가 선이나 악의 기준이 될 수 없는 게 당연합니다.
과학의 모든 기준의 척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주의 (Scientism) 입니다. -ism이 붙는 것들은 이데올로기/이념입니다.
과학적으로 뇌 MRI/CT, 뇌파측정 등을 통해 한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부분도 있겠죠.
하지만, 그 방법엔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시다면, 저와 대화를 하거나, 제 글을 통해, 소통을 통해 아는 것이 더 의미 있는 방법일 것입니다.
#3
역사 속의 종교전쟁부터 현대사회의 테러까지 종교가 폭력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두 번의 세계대전, 공산주의 국가들의 역사를 보면 계몽된 무신론의 세계에서도 폭력은 똑같이 존재합니다.
프랑스 혁명은 부르조아 대신 자본가들을 새로운 권력층으로 세웠을 뿐이고
러시아 혁명도 진정한 의미의 혁명은 아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의 주관적인 경험 속의 종교인, 종교시설 역시도
객관적인 사실여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알지 못하고 믿는 맹신 대신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1) 모든 인간들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진 사고력, 논리에서 시작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내가 가진 의심을 의심해보는 것에서 시작해볼 수 있습니다. "Doubt your doubts."
(3) 내가 의심하는 대상에 적용한 기준을 반대편에도 적용해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4 분석 예시 : Q&R: 개독교인들 하는 꼬라지를 보면 기독교의 절대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주장을 하나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댓글러의 주장: 개독교인들 하는 꼬라지를 보면 기독교의 절대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런 판단은 상관관계와 인과관계 혼동한 오류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제: (a) 기독교의 절대자가 존재한다면 (b) 그 신자들은 모두 성경을 근거로 산다.
관찰된 현상: (내가 본) 개ㅁ교 신자들의 ** 같은 행위
일단 (a)와 (b)는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상관관계가 있긴 합니다만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아닙니다.
개ㅁ교를 대할 때 주관적인 경험을 통한 감정적인 판단을 하기 쉬우니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관찰된 현상: 철수라는 아이가 제대로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한 개망나니처럼 굽니다.
제가 내릴 수 있는 판단(추측):
(1) 철수는 가정교육을 받지 못한 것 같으니, 부모님이 없을 것이다.
(2) 철수는 엄격하지 않은 부모님 밑에서 자랐을 것이다.
(3) 철수는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밖에서 저렇게 망나니처럼 구는구나
(4) 기타 등등
여기서 철수의 행위를 보고 철수 부모님의 존재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사회학적 이론의 실행가능여부는 말씀하신 가설을 적용시키면 그나마 합리적입니다.
예) (관찰된 현상)
'마르크스 주의/공산주의'를 적용한 국가들은 경제적 부흥과 사회적 번영을 이뤄내지 못하고 실패했다.
(결론)
고로, 마르크스 주의는 현실에 부합하지 않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판단을 잘못 내린 이상주의이다.
실현불가능한 이상론이다. "
하지만 '마르크스 주의자'들의 행위를 보고, 마르크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면 그건 논리적 오류입니다.
결론: 논리적으로 A의 존재여부는 'A의 존재여부'를 믿는 사람들의 행위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철수의 예를 개ㅁ교에 적용시키면
(1) 개ㅁ교의 절대자는 '강제하지 않는', 즉 자유의지를 부여한 존재일 수 있고
(2) 개ㅁ교 신자가 성경을 안 읽을 수 있고
(3) 개 ㅁ교 신자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 같은 목사가 잘못된 가르침을 주고 있을 수 있고
(4) 어느모로 봐도 훌륭한 목사가 가르치는 교회가 있는데, 그 중의 ** 같은 신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편 적용)
마찬가지로 세브란스 병원, 연세대, 이화여대 등 외국 기독교인들이 자기들 돈을 들여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시설들을 세우고 의학, 여성인권 등에 도움을 준 시절이 있습니다. 그럼 이런 선행들을 보고 그들의 신이 존재한다 라고 결론을 내리면 그건 논리적일까요? 아니죠. 우호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도와줄 참고사항일 뿐입니다. (논리적 영역에서 봤을 때)
우리가 지성과 이성을 제대로 사용했을 때, 우리는 거짓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 많은 사람들이 '추천' 했기 때문에 거짓이 사실이 될 수 없습니다.
다큐멘터리 역시 기획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지는 TV 프로그램이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줄 사람을 섭외하여 인터뷰 합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역시 마찬가지고, 히스토리 채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감정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해보세요.
1.7 논리, 우주론 Logic & Cosmology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