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특집: 1부-유행하는 육아 철학 vs. 성경의 잠언 (feat. 조던 피터슨)에 이어 계속...)
배경 요약: 육아 중인 직장인이자 아빠로서 요즘 유행하는 육아철학과 성경의 가르침과 비교해보다가 우연히 읽게된 조던 피터슨 (Jordan Peterson)의 책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말하는 육아지침에 대해 소개해보고 있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하신 분이라면 들어보셨을 행동주의(Behavioral Psychology) 심리학자 스키너(B.F Skinner) 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비유인 '당근'과 '채찍', 즉 '보상'과 '처벌'로 어떤 행동을 자주 하게 하거나 안하게 훈련시키기 위해 고안된 '스키너 상자'도 유명합니다.
그는 그 방식으로 무려 비둘기를 훈련 시켜서 탁구를 하게 하고 (비둘기 버전의 탁구이지만) 미사일을 조종하게 한다거나 하는 실험도 해냈다고 합니다. (시연에서 성공은 했지만 군에서 최종적으로 채택하진 않았다고 합니다.)
조던 피터슨은 스키너의 방법을 통해 훈육에 적용되는 보상과 처벌의 효과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처벌이 아닌 보상을 통한 훈육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생략)
스키너 방법을 잘 활용하면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다. 먼저 당신이 가르치고 싶은 것을 정한다. 다음에는 대상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그리고 당신이 가르치려는 것과 비슷한 행동을 할 때마다 즉각적이고 적절한 보상을 해준다.
[원문] It's not impossible to discpline with reward... (생략)
You can teach virtually anyone anything with such an approach. First, figure out what you want. Then, watch the people around you like a hawk. Finally, whenever you see anything a bit more like what you want, swoop in (hawk, remember) and deliver a reward.
-<12가지 인생의 법칙 (12 Rules for Life) > 조던 피터슨 -
제가 들었던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되어 있는2017년 토론토 대학에서의 심리학 강의 "Personality and Its Transformation") (총20강)에서도 같은 얘기를 했었죠.
아이 혹은 배우자가 자기(관찰자)가 원하는 행동을 하게 하고 싶으면 계속 지켜보고 있다가 그 행위를 하는 순간 계속 칭찬을 해주라고요.
(하지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잘하는 건 당연하게 여기고 잘못하는 걸 지적하는 게 디폴트로 설정되어 있는 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칭찬이 적은 세상 속에서 살고 있죠. 아이를 키우며 생각하게 된 건데, 아이들의 인생의 초반은 마치 부모님의 칭찬을 통해 성장하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될 정도로 아기의 행동 하나 하나에 부모가 칭찬을 쏟아 붓는 것 같습니다. 눈을 마주친 것, 웃는 것, 앉을 수 있게 된 것, 기어갈 수 있게 된 것, 설 수 있게 된 것, '엄마', '아빠' 소리 내어 부를 수 있게 된 것, .. 그런 사소한 것들로 칭찬을 받으며 자라다가 조금 더 자라면 그런 것들이 당연해지고 부모의 요구가 많아지고 모자른 것들에 대해 지적하고 잘못하는 것들에 대해 혼내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는 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 ※개인적 감상이라 작은 글씨로
그리고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그런 식의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이야기 합니다.
부모의 개입으로 자녀가 행복해지면 좋은 품행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는 자녀 뿐만 아니라 남편과 부인과 동료와 부모 등 모든 인간관계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Parental interventions that make children happy clearly can and should be used to shape behaviour. The same goes for husbands, wives, co-workers and parents.
-<12가지 인생의 법칙 (12 Rules for Life) > 조던 피터슨 -
보상을 통한 교육의 한계
하지만 칭찬(보상)을 통한 교육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선 그 대상을 계속 관찰하고 있어야 된다는 점에서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리고 개념만 기억하는 저희와 같은 대중이 알고 있을 리 없는 스키너가 한 실험의 세부사항을 이야기 합니다.
[번역본] 그런데 스키너는 현실주의자였다. 그는 적절한 보상을 준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상이 자발적으로 목표행동을 할 때까지 관찰자는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끈기있게 지켜봐야한다. 기다림이 언제까지 계속 되어야 할지 모른다는 큰 제약이 있다. 스키너는 대상 동물로 하여금 먹이 보상에 집착하게 하려고 동물을 굶겨 평상시 체중의 4분의 3 정도까지 떨어뜨렸다. ...
[원문] Skinner, however was a realist. He noted that use of reward was very spontaneously manifested the desired behavior, and then reinforce. This required a lot of time, and a lot of waiting, and that's a problem. He also had to starve his animals down to three-quarters of their normal body weight before they would become interested enough in food reward to truly pay attention. ...
그렇죠. 동물 실험이라서 가능한 준비 조건으로 봐야할까요. 체중을 3/4까지 감소시켜서 음식이 큰 보상이 될 수 있도록 (혹은 집착할 수 있게 하는) 상황에서 이런 전략이 성공했다는 걸 이야기 해줍니다.
한편 아이들이 말을 잘 할 수 있게 되면 그 전 시기에 비해 부모의 칭찬이 극단적으로 줄어든다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그런 상황이 체중을 3/4까지 감소시킨 것과 유사한 정서적 상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거나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아이에게 '칭찬'이 더 큰 효력을 발휘하는 건 아닌가란 생각을 해봅니다. ※개인적 감상이라 작은 글씨로
그럼 칭찬을 통해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의 반대인 부정적인 감정은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을까요?
조던 피터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부정적 감정의 긍정적 효과
[번역본] 긍정적인 감정뿐만 아닐 부정적인 감정에서 배우는 것도 많다. 인간은 어리석고 쉽게 상처 입는 존재라서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실제로 비슷한 정도의 이익과 손해가 있을 때 이익으로 얻는 기쁨보다 손해로 인한 고통이 더 크다. 고통이 즐거움보다, 불안이 희망보다 우리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원문] Negative emotions, like their positive counterparts, help us learn. We need to learn, because we're stupid and easily damaged..... In fact, we feel more negative about a loss of a given size than we feel good about the same-sized gain. Pain is more potent than pleasure, and anxiety more than hope.
-<12가지 인생의 법칙 (12 Rules for Life) > 조던 피터슨 -
이렇게 대조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잃을 때의 (혹은 잃을 수 있다는) 부정적 감정,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긍정적 감정의 효과를 비교하자면 어쩌면 전자에 대한 불안함이 더 절실하게 작용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번역본]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은 각각 다른 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만족(심리학 용어로는 포만)은 우리 행위가 적절했다는 걸 말해주고, 고통 (심리학 용어로는 포만)은 그것을 일으키는 행동, 예를 들어 개인적인 피해나 사회적 소외(심리학에서는 외로움도 고통의 한 형태로 본다) 로 이어지는 행동을 하지 않게 만든다. 불안은 마음을 상하게 하는 사람이나 불쾌한 장소를 피하게 한다. 애초에 고통이 생길 만한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과 긍정적인 감정은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하고, 상황 변화나 맥락에 따라 적절하게 판단해야 한다. 삶의 활력을 잃지 않고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려면 이런 감정이 모두 필요하다.
그래서 아이를 가르칠 때도 부정적인 감정을 비롯해 아이들이 세상을 배우는 데 필요한 것을 빠짐없이 사용해야 한다.
[원문] Emotions, positive and negative, come in more two usefully differenciated variants. Satisfaction (techinically, satiation) tells us that what we did was good, while hope (techincally, incentive reward) indicates that someting pleasurable is on the way. Pain hurts us, so we won't repeat actions that produced personal damage or social isolation(as lonelinessis also, technically, a form of pain).
Anxiety makes us stay away from hurtful people and bad places so we don't have to feel pain. All these emotions must be balanced against each other, and carefully judged in context, but they're all required to keep us alive and thriving.
We therefore do our children a disservice by failling to use whater is available to help them learn, including negative emotions, even though such use should occur in the most merciful possible manner.
-<12가지 인생의 법칙 (12 Rules for Life) > 조던 피터슨 -
전 현대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불안(anxiety)'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마주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불안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관점. 전 평소에 불안함을 잘 느끼지 않는 편인데, 무의식적으로 불안을 극복해야 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불안함은 주로 짝사랑/썸 단계에서 느꼈던 것 같네요. 유부남이 된 지금은 전...혀..! 물론 철학적/신앙적인 근본에서 안정감 있는 세계관을 갖고 있는 게 좀 더 큰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요)
아이를 위해서인가? 나를 위해서인가?
사람마다 개인적 성향차이가 있죠. 어떤 사람은 갈등을 최대한 피하고 싶어하는 '갈등회피 성향'이라고 한다면 갈등을 마주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도 있습니다. 부모가 되어서도 그런 성향이 유지될 것이고 어쩌면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철학', '육아 트렌드'가 그런 성향과 맞물려서 강화되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육아에 피곤하고 지친 양육자에게 '아이는 최대한 간섭하지 않는 게 좋다'라는 육아철학이 들렸을 때, 그걸 받아드리기 쉬운 건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번역본] 훈육 책임을 등한시 하는 부모는 올바른 양육에 필요한 갈등을 피하고 싶어한다. 잠깐 악당이 되기 싫어서 자녀를 영원한 고통의 구덩이로 밀어넣는다. 사회는 어떤 엄한 부모보다 비판적이고 매정하다. 어떤 매정한 부모보다 훨씬 더 아프게 때리고 가혹하게 처벌한다. 당신 자녀의 훈육은 당신이 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책임을 냉혹하고 무정한 세상에 떠넘기는 것이다. 사랑을 핑계로 훈육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비겁한 직무유기이다.
[원어] Parents who refuse to adopt the responsibility for disciplining their children think they can just opt out of the conflict neccessary for proper child-rearing. They avoid being the bad guy (in the short term). But they do not at all rescue or protect their children from fear and pain. Quite the contrary: the judgemental and uncaring broader social world will mete out conflict and punishment far greater than that which would have been delievered by an awake parent. You can discipline your children, or you can turn the responsibility over to the harsh, uncaring judgemental world -- the motivation for the latter decision should never be confused with love. (157-158)
아이들을 훈육해야 하는 책임을 거절하는 부모는 이 필수적인 자녀 양육이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모들은 (단기적으로) '나쁜 사람/나쁜 역할'을 하는 것을 피해간다. 하지만 (그런 행위는) 전혀 아이들을 두려움과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 지켜내지 못한다.
오히려 그와 반대이다: 비판적이고 무정하고 더 넓은 범위의 사회는 깨어 있는 부모를 통해 전달되었을 갈등과 사회를 아이들에게 할당할 것이다. 여러분은 자신의 자녀를 훈육하거나 그 책임을 잔혹하고 무정하고 비판적인 사회에게 전가할 수 있다. 후자를 선택하는 동기는 절대로 사랑과 혼돈되면 안된다.
[IoM 자체번역(출판사 편집장은 싫어할 +원어에 충실한)]
부모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불가피하게 희생을 선택하게 됩니다. (강요 받는다는 표현은 왠지 쓰기 싫네요) 그리고 부모의 자기중심성(이기심)은 시시때때로 부모된 우리가 권리를 찾을 수 있는 방향으로 눈 앞의 모든 걸 해석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게 아이에게 더 좋다는 해석이 뒷받침 될 경우, 그런 주장/방법이 정말 아이에게 유익한지 고민하기 전에 그걸 수용하기 쉬운 경향이 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겠죠. '나에게도 좋은 것이 아이에게도 좋다' 라니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요.
심리학에서는 인간은 보편적으로 갈등을 피하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다고 하니 아이와의 갈등의 순간인 훈육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가정교육의 부재로 아이가 '사회환경(어린이집, 학교)'에서 필요한 예의범절, 최소한의 배려를 배우지 못한 채로 사회로 나간다면 그 아이가 겪을 어려움도 충분히 예상가능한 것 같습니다. 어느 보육교사가 부모를 대체할 정도의 사랑으로 아이를 마주할 수 있을까요.
'행복한 부모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 라는 말은 아마 부분적으로 맞을 겁니다. 불행한 부모가 아이의 행복을 고려할 수는 없을테니깐요. 하지만 어느 부모가 궁극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우선함으로서 아이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을까요. 특히 부모의 희생이 아이의 행복과 연관된 상황일 때는요.
주로 결혼생활 속 배우자와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내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이혼을 선택하게 되는 장면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것 같습니다. 극단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어느 아이가 부모의 이혼을 통해 더 행복하게 될까 의문입니다.
물론 자기희생 성향이 강한 사람일 경우, 너무 모든 것을 아이를 위해 희생하기 쉽고 그 과정에서 본인의 건강을 뒷전에 놓게 되는 경우라면 '건강한 부모가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데 더 유리하다' 라는 정도의 주장은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치적 올바름(정치적 공정함)에서 말하는 '성인중심주의' ??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어른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아이들을 대합니다. 그런 '성인 중심의 시선'이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면은 분명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인 중심의 시선' 자체가 나쁜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더 성숙한 어른이 미성숙한 아이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의 교육은 필요할 수 있지만 그걸 '정치적 올바름/ 정치적 공정함' (Political Correctness)의 프레임에서는 이걸 성차별과 인종차별과 유사한 억압이라고 정의하나 봅니다. (한국에서 제가 그런 부모들을 경험한 적은 없지만, 경험하신 분들이 있으실까요?)
어떤 부모들은 "왜 자녀가 부모의 독단적 명령에 따라야 하는가? 라며 이의를 제기한다. 실제로 최근 등장한 '정치적 공정함 (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의 주제에는 성인의 생각을 아이에게 가르치는 행위를 성차별, 인종차별 유사한 억압의 하나로 간주하는 내용이 있기도 하다. 정치적 공정함(올바름)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런 행위를 '성인 중심주의'라는 이름으로 비판한다. (103) 성인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할 때는 생각해봐야 할 것이 많다. 그 의문에 담긴 속뜻도 철저히 파헤쳐 봐야한다. 반대 의견의 타당성을 인정하려면 먼저 그 의견이 전제로 하는 것들을 살펴봐야 한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제기한 반론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비판 없이 수용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앞에서 언급한 반대 의견을 자세히 분석해 보자.
부모의 "독선적인" 명령을 따라야 하는 이유에 대해 조던 피터슨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번역본] 모든 아이가 어른의 말을 따라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른의 완벽한 존재는 아니지만, 모든 아이는 어른의 보살핌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도 어른의 사랑과 관심을 받을 수 있게끔 행동하는 게 유리하다. 무엇보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어른들로부터 최상의 관심을 유도하면서, 동시에 현재 상태와 미래의 발전에 도움이 될 만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기준이 상당히 높지만 아이는 이를 통해 최고의 혜택을 얻는다. 아이들이 그 기준에 부합하는 행동을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 ....
모든 아이는 시민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다고 사회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자녀가 집 밖 세상에서 성공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행동을 하면 부모가 반드시 보상해야 한다는 뜻이다. 집 밖 세상에서 불행과 실패로 이어질만 행동을 하면 망설이지 말고 단호하게 혼내라는 뜻이다.(p.201)
사회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조건도 걸고 나니, 저자의 의견은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해봅니다.
우리 집 사례
제 짧은 육아 경험 중에서는 '내 꺼'라는 말을 배우게 되고 '독점욕'이 발현되기 시작하게 될 때 마주하는 여러 상황이 떠오릅니다. 친구 집의 아이는 저희 아이가 그 집에 놀러가서 장난감을 만지고 노는 게 싫어서 엄마에게 가서 웁니다. 여러 아이들이 모여 노는 공간에서 살펴보면 어떤 아이는 다른 아이가 가지고 놀고 있는 장난감을 자연스럽게 '뺏어서' 가져옵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제약받으면 '내 꺼-'라며 울기도 합니다. 어떤 아이는 그렇게 다른 아이 손에 있는 장난감을 뺐기 위해 아이를 밀치기도 합니다.
저희 집 아이는 동생 손에 있는 자기 장난감을 아주 당연하게 뺐고 그리고 동생이 울면 멀리 도망갔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다른 장난감을 가져가서 바꾸자고 하는 걸 가르쳐보기도 했고 양보를 연습시켜보기도 했습니다. 동생을 밀면 안된다는 걸 배우고 나서는 자기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동생이 갖고 싶어서 오면 등을 돌려 장난감을 지키면서 엉덩이나 어깨로 동생을 밀어내는 전략을 쓰기도 하고, 어떤 경우엔 발로 밀어내기도 합니다. (발로 미는 건...손으로 미는 거랑 다르다고 판단한 걸까요...) 아직도 '양보'와 '같이 놀기' 에 대해 가르치는 중에 이 책을 보게 됐죠.
부모로서의 제 행동을 돌아보면 전 다행히 첫째 아이가 뭘 양보해야 됐을 땐 아이를 안아서 위로해주고 있었고 아이가 자발적으로 동생에게 뭘 양보해주거나 나눠줬을 땐 칭찬을 해주고 있었네요.
아이가 둘이 있을 때 겪을 수 밖에 없는 상황: 아이 둘이 하나만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싸웁니다. 그럴 때 어떻게 대응해야 좋을까 고민해봤습니다. 주로 '하나만 있으면 싸우니 두 개를 산다' 라는 전략을 활용된 상황을 많이 봤던 것 같습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이걸 분석해봤습니다.
- 상황/조건: '하나'만 있는 장난감
- 상황에 대한 대응: 싸움
- 보상: 하나 더 생긴 장난감
싸우면 장난감이 하나 더 생기는 보상을 얻게 되는 상황이 됩니다.
아이들이 싸우고 울면 부모가 스트레스를 받으니 장난감을 늘리는 방식으로 아이들의 평화를 유지하는 전략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부모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 속에서 생성되고 있는 '인과관계' 체계 속에서 "싸우면" (조건) "장난감이 늘어난다" (결과) 라는 공식이 생기게 되는 건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어서 전 좀 다르게 접근해보고 있습니다.
- 상황/조건: '하나'만 있는 장난감
- 상황에 대한 대응: 싸움
- 처벌: 하나만 있는 장난감을 아빠가 뺏어감
장난감을 사이좋게 나눠서 놀지 않으면 하나 있는 장난감 마저도 뺐긴다는 '처벌'의 적용인 거죠. 아이에게 "사이 좋게 나눠서 놀지 않으면 있던 것도 없어진다" 라는 교훈(?)을 가르치고 싶은 아빠의 마음으로 하게 된 실험이 된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상황이 연출되면 둘 다 웁니다. 그 때 부모가 하나씩 달래면서 (장난감을 주진 않고) 설명하고 다른 장난감으로 놀게 한다거나 주의를 환산시킵니다.
"언니가 양보해", "동생이니깐 양보해"는 아이에게 선택권이 없는 '탄생시점'을 기초로 아이가 불공평한 대우를 받게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 설명을 지양하고 있습니다. (저도 아내도 첫째라 첫째가 겪게 되는 양보강요와 희생은 좀 주의해서 피해보려고 하는 중이죠)
※물론 처음부터 두 아이에게 하나씩 선물을 줘서 예방하는 전략은 아무도 울지 않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아름다운 해결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적용은 하나 밖에 없는 장난감 때문에 "싸워서" "보상"을 받는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예시입니다. 우리 집에 없는 장난감 때문에 밖에서 다른 아이와 싸웠을 때 그 장난감을 사주는 것으로 보상 받는 상황은 "싸우면" "장난감이 생긴다" 라는 공식이 성립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제 '4학년' 아빠이니 아직도 갈 길이 멀죠. 어디에 이게 정답이라고 말할 권위자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이게 더 합리적이고 교육적이지 않을까 생각하여 적용해보는 중이다- 정도로만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 1년 후, (2023년 9월에 추가) 이제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한 23개월 된 둘째와, 40개월 되어가는 첫째는 아직도 먼저 놀고 싶은 게 있으면 울면서 감정조절이 필요할 때도 있는 것 같지만 대부분 자기들끼리 "사이좋게" 라는 말을 하며 "차례차례" 라는 말을 하며 하고 있어요. 주위의 어떤 자매보다 서로 재밌게 사이좋게 놀고 있어서 위 전략(?)을 선택한 건 잘했던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생각 많고 복잡한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을 더합니다.
사회화가 안 된 아이는 원만한 삶을 살기가 쉽지 않다. 부모는 자녀의 사회화를 도와야 한다. 보상을 통해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보상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처벌과 위협이 필요한가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사안이라 질문 대상이 아니다.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가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기질이 모두 달라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심리학은 보편적으로 진화론적 생물학을 바탕으로 한 '진화심리학'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물학적 요소가 각기 다른 아이들의 '천성'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죠. 그는 아이들의 성향을 이렇게 대조합니다.
상대를 즐겁게 해주고 싶어함 | 갈등을 두려워하고 의존적인 성향 있음 |
강인하고 독립적인 성격 | 도적적이고 반항적이며 마음대로 하려는 성향이 있음 |
규칙과 질서에 잘 적응하는 아이 | 최소한의 통제도 못 견뎌하는 아이 |
상상력과 창의력이 뛰어난 아이 | 사실적인 것을 중시하고 보수적인 성향을 띠는 아이 |
그리고 다음과 같이 주장을 마무리 합니다.
생물학적 요인에 영향을 받는 이런 성향은 사회적 요인에 의해서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이런 큰 편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통제 기법들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모두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선천적 기질의 긍정적인 요소만 부각하고 부정적인 요소에는 어떠한 제제도 가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어쩌면 그 부정적인 요소는 고스란히 가지고 성장해나가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체벌절대불가론에 대한 반문
중고교 체벌문화를 경험해보지 못한 제가 봤을 때는 가히 폭력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대한민국 중고등학교 체벌문화를 겪으셨을지도 모르는 또래 부모님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폭력'에 대해 부정적이신 것도 아주 당연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배운 것을 답습하여 '악습'으로 이어가지 않고 그런 아픔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가정 내의 개혁/혁명을 이뤄내고 계신 거니깐요.
※여담: 전 '반권위적' , '반폭력적' 성향을 지닌 사람입니다. 군생활을 할 때도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라' 라는 식으로 이어져오던 '악·폐습'이 많았는데, 제 계급이 올라갈수록 뜻이 맞는 선임병사들과 협의를 해가며 없애갔던 경험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신고해서 이뤄진 강제적인 개혁이 아닌 유기적이고 부드러운 개혁이었던 것 같아요. 잘 생각해보면 이런 변화는 자기를 괴롭히던 사람들이 누리던 "권위"와 혜택을 포기하는 자발적 "희생"이 필수였던 것 같네요. 우리 사회의 많은 조직 안에서도 이런 개혁이 계속해서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학교, 동아리, 회사는 물론 교회를 포함한 모든 조직 안에서요.
1) 체벌은 어떤 경우에서도 안된다?
조던 피터슨은 '체벌절대불가론'의 주된 2가지 주장 중 첫번째 주장에 대해 이렇게 반론합니다.
(1) 도둑질이나 폭력 같은 잘못된 행위는 제재해야 한다는데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 잘못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처벌을 하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중략)
(2) 처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폭력적인 체벌만을 떠올리지만 그 외에도 여러 형태의 심리적, 신체적 제재 수단이 있다. ...(중략)
(3) 사태의 악화를 막기 위해서 신속하고 확실하게 제재해야하는 행동들이 있다. ...(중략)
(4) 잘못된 행동에 대한 처벌은 나이 들수록 가혹해진다...다섯살 까지 사회화가 제대로 되지 않은 아이는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사회의 처벌을 받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중략)
(5) '체벌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해서는 안된다'라는 이론을 지지한다면 '안된다(no)'라는 말로 모든 나쁜 행동을 제지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
도둑질이나 폭력 같은 잘못된 행위는 제재해야 한다는데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 잘못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처벌을 하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1) 첫번째 포인트는 우선 '어떤 경우'라는 무조건적인 주장에 대한 반론은 당연히 설득력 있습니다. 중범죄에 대한 처벌이 없는 사회는 중범죄를 조장하는 사회가 되기도 하니깐요.
처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폭력적인 체벌만을 떠올리지만 그 외에도 여러 형태의 심리적, 신체적 제재 수단이 있다.
(2) 그럼 두번째 포인트는 어떤가요?
'처벌(punishment)'에는 '체벌(Physical Punishment)' 만이 아닌 다른 방법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는 '반성문 쓰기'가 벌이 될 수 있는 것처럼요. (물론...일정수량을 초과하면 체벌로서의 효과도 있는 것 같지만요..)
절대적으로 아이들에 비해 힘이 쎈 부모들은 아이에게 물리적인 고통을 주는 체벌도 가능하지만 다른 방식의 '처벌'도 가능합니다. 한국 육아용어 중 어느 순간 일반용어가 된 것 같는 'Thinking Chair (생각하는 의자)' 나 'Time Out')도 비슷한 '고통'을 주기 때문에 유효한 수단이라고 합니다.
사회적으로 결리시키는 '타임아웃(생각하는 의자, 생각의 방)' 처벌도 비슷한 고통을 준다. 신경 생물학적으로도 이런 사실이 확인된다.....(중략)....교도소에 가두는 것은 폭력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신체적 처벌에 속한다. 특히 독방에 가두는 것은 매우 강력한 신체적 처벌이다.
Deprivation of liberty causes pain in a manner essentially similar to that of physical trauma. The same can be said of the use of social isolation (including time out). We know this neurobiologically. ... .
Jail is clearly physical punishment -- particularly solitary confinement - even when nothing violent happens.
사태의 악화를 막기 위해서 신속하고 확실하게 제재해야하는 행동들이 있다.
(3) 세번째 역시 아주 당연한 부분을 지적함으로서 저 주장의 빈약함과 비현실성에 주목시킵니다.
젓가락을 들고 전기콘셉트에 꽂으려는 아이와 차들이 다니는 주차장에서 뛰어노는 아이에 대한 제재 필요성을 예로 듭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해법은 간단합니다. 이런 위험한 행동을 빨리 멈추게 할 수 있는 거라면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뭐든지 해야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초래하는 결과가 치명적이니깐요.
잘못된 행동에 대한 처벌은 나이 들수록 가혹해진다...다섯살 까지 사회화가 제대로 되지 않은 아이는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사회의 처벌을 받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중략)
(4) 네번째 근거에서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합니다.
어린 나이에 제재해서 교정했다면 쉬웠을 행동에 대한 댓가는 아이의 나이가 클수록 더 가혹해집니다.
극단적인 비교로 2살,3살 반 어린이집에서 다른 아이의 물건을 뺐는다면 (혹은 다른 사람을 물거나 차거나 때리는 행위) 거기에 대한 처벌과 고등학생이 되어 다른 학우의 물건을 뺐었을 때의 처벌을 상상해봅시다. 그리고 사회인이 되서 같은 행위를 했을 때의 처벌은 어떤가요?
그리고 위기감을 느끼게한 통계를 인용합니다.
세살쯤에 과도하게 공격적인성향을 보인다. 그런 아이들은 발로 차고 주먹을 휘두르며 물어뜯고 장난감을 훔치는 경우가 또래보다 많았다는 통계가 있다. 남아는 약 5%가 이런 성향을 띠고, 여아는 그 비율이 낮다. (106)
Those unconstraint four-years olds, in turns, are often those who were unduly aggresive, by nature, at age two. They were statistically more likely than their peers to kick, hit, bite and take away toys (later known as stealing). They comprise about five percent of boys, and much smaller percentage of girls.
아... 저희 집 첫째아이가 지금 한국 나이로 세살 (28개월)이니 그 시기네요. 혹시 아이들이 이 시기를 지났다면 조금 안심해도 되시게 될 대목일까요. )
그리고 넷플릭스에서는 이런 사건을 주요 소재로 한 소년심판이란 작품도 있듯이 현대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촉법소년'(觸法少年)과 관련된 폭력적 사건의 연관성도 암시합니다.
[번역본] 결국 '체벌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해서는 안된다'라는 주장은 10대의 악마도 한때 순박한 아기 천사였다는 망상을 조장할 뿐이다.
[원문] To unthinkingly parrot the magin line "There is no excuse for physical punishment" is also for foster the delusion that teenage devils magically emerge from once-innocent little child-angels.
[자체번역]
별생각없이 "체벌은 어떤 이유에서도 용인되면 안된다" 라는 마법의 대사를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것은 한 때는 순진했던 아기 천사들이 마법같이 갑자기 '악마 같은 10대 청소년'으로 변했다는 망상을 키울 뿐이다.
일리가 있는 분석이라고 생각됩니다. 십대가 되서 호르몬의 영향으로 갑자기 폭력적이 되었다라는 해석도 물론 일리가 있지만, 그런 십대 청소년이 만약 어렸을 때부터 그런 성향이 있었고 이에 대해 전혀 통제 받지 않았다면 이런 사회현상에도 기여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정에서 폭력을 경험하며 자랐다거나 폭력적인 문화 콘텐츠에 심취했다거나 여러가지 기타 요소도 있겠지만요.
그리고 부모의 역할을 강조하며 네번째 반론 근거를 마무리 합니다.
자녀가 기질적으로 공격적인 성향을 띠는데도 바로잡지 않는 것은 자녀의 장래에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다.
맞는 말이죠.
(5) '체벌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해서는 안된다'라는 이론을 지지한다면 '안된다(no)'라는 말로 모든 나쁜 행동을 제지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
[원문] To hold the 'no excuse for physical punishment' theory is also (fifth) to assume that the word no can be efffectively uttered to another person in the absence of the threat of punishment.
어느 영화에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아이가 "No." "안돼", "하지마" 라는 말이 큰 힘이 있을 거라고 믿는 듯 말하며 주변 친구들에게 맞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안돼'라는 말에 힘이 있으려면 그 말을 따르지 않을 경우의 댓가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죠. 성인이 된 저희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아직 그런 인과관계 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은 상태일 겁니다.
- 상황/조건: 하면 안되는 어떤 일을 "안돼" 라고 말하는 부모.
- 조치/결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안돼' 라는 말은 어떤 결과도 일으키지 않을 거라는 공식을 배우게 될 지도 모르겠네요.
저자에 따르면 '안 돼 (No)'라는 말의 뒤에는 이런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번역본] 결국 '안 돼'라고 하는 말은 '네가 그 행동을 멈추지 않으면 네게 매우 안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안돼'는 아무 의미 없는 말이 된다.
[원문] what no means, in the final analysis, is always "If you continue to do that, something you do not likely will happen to you." Other wise it means nothing.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도 있겠지만 주위 또래아이들을 모방하며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많고,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양육자나 보육자를 통해 배워야 하는 것이 아이들입니다. 그런 아이들이 이런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된다면 아이들이 배우게 되는 것은 아래 상황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번역본] 실질적인 조치들이 전제되어 있지 않으면 '안 돼'라는 말은 '힘 없는 어른이 내뱉은 의미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모든 어른들은 무시해도 될만큼 무능하고 나약하다'라는 생각으로 이러질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은 어른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결국에는 성인이 되어 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
[원문] Or, worse still, it means, "all adults are ineffectual and weak." This is particularly bad lesson, when every child's destinity is to become an adult, and whewn most things that are learend without undue personal pain are modelled or explicitly taught by adults.
그리고 그게 아마 현재 교육계에서 겪고 있는 교권상실(敎權喪失)과도 연관성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폭력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안 돼'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문명인이 문명인에게 말할 뿐이다.
The only time no ever means no in the absence of violence is when it is uttered by the civilized person to another.
2) "어린아이를 때리면 아이에게 폭력을 가르칠 뿐이다"?
(원문: Hitting a Child is merely teaches them to hit | [자체번역] 아이를 때리는 건 아이가 타인을 때리는 걸 가르칠 뿐이다)" ?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고민을 하고 갈팡질팡 했던 부분입니다.
아이들에게 내재된 학습능력 중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건 '모방능력'인 게 사실입니다.
실제로 아이가 아직 말을 하지 못할 때, 콘센트에서 위험한 행동을 해서 처음엔 아이에게 다른 곳에 주의를 돌리게 해야한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던 때라 다른 곳으로 데려가서 놀게햇었고, 나중에서야 "ㅇㅇ하면 안돼"라며 때리는 시늉을 했더니 그걸 따라하며 절 때리려 드는 걸 보고 식겁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때는 '아, 아직 인과관계를 학습할 수 없는 발달단계인가보구나-' 하며 훈육노선을 틀었습니다.
(결국 나중에 할머니가 엄하게 혼내서 콘센트 근처에만 가면 '안돼! 할머니! 때찌!' 라고 저에게 알려주는 일도 있었죠..)
(1) 조던 피터슨은 이 책에서 이 주장이 너무 단순하다며 틀렸다고 말합니다.
[원문] No. Wrong. Too simple.
[번역본 오류]결론부터 말하면 이것 역시 잘못된 주장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자체번역] 너무 단순한 해석이라 틀렸다. (O)
[원문] "hitting" is a very unsophisticated word to describe the disciplinary act of an effective parent.
[번역본] '때리기(hitting)'는 유능한 부모의 훈육 행위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그쵸. 모든 범위의 물리적 힘(충격)을 "때리는 것"으로 해석하면 떨어지는 빗방울과 원자폭탄의 차이는 없으니, 규모나 강도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맥락(context)도 중요합니다. 아무 이유 없이 지나가던 개에게 물렸을 때와 개가 먹고 있던 뼈를 뺐어서 물렸을 때의 차이를 아이는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규모와 맥락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타이밍도 맥락에 포함된다.
Timing, part of context, is also crucial importance.
그리고 예를 듭니다.
[번역본] 세살짜리 아이가 나무 블록으로 어린 여동생의 머리를 때리는 것을 보고 그 즉시 꿀밤을 때린다면, 세살짜리 아이라도 두 행위의 관련성을 깨닫고 다음에 그런 충동이 생길 때 조금이나마 망설일 것이다. ........
[원문] If you flick your two-year-old with your finger just after he smacks the baby on the head with wooden block, he will get the connection, and be at least somewhat less willing to smack her again in the future. ... ...
※ smack your finger => 딱밤 (O, 손가락으로 튕기는 ), 꿀밤 (X, 꿀밤은 주로 주먹을 쥐고...)
28개월이 된 저희 아이는 이제 그런 관련성을 인지하는 단계가 되었습니다. 자기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동생을 밀거나 넘어뜨리면 바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걸 배웠죠. (..물론 아직 영혼 없는 사과 입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지금 단계에 그렇게 발달되지 않아요...)
"ㅇㅇ 하면 어떻게 되지?" 하고 물어보면 "위험해요. 쾅! (떨어지는 것에 대한 경고) , 아야야" 정도의 관계도 파악을 합니다.
소위 '타임아웃'이라고 하는 처벌(체벌)은 어떨까요?
[번역문] '타임아웃'은 무척 효과적이다. 아이를 일시적으로 사회와 격리시키는 방법이다. 못된 짓으로 벌을 받던 아이가 화를 다스리자마자 또래들과 즉시 어울릴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효과적이다. (x)
[원본] Time out can be an extremely effective form of punishment, particularly if the misbehaving child should sit by himself until he calms down. Then he should be allowed to return to normal life.
3남매 중의 장녀인 제 아내는 어렸을 때 자기가 울면 엄마 대신 자기를 봐주고 있던 할머니께서 자기를 울음을 멈출 때까지 다른 방에 가뒀다고 합니다. (꽤 오랜 시간동안...) 이런 접근 방식은 제 생각엔 조금 과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에게 이런 식의 처벌을 제대로 해본 적은 없어요.
어느 친구 집에서는 아이가 뭘 잘못했을 때 팔을 꼭 붙잡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잘못한 걸 혼낸다고 하고, 다른 친구 집에서는 잘못하면 자 같은 걸로 손을 살짝 때린다고 해서, 참고해보려 했으나 제대로 실행할 수 있었던 기회는 없었던 것 같네요. 애기가 울면 저도 맘이 약해져서;;;
조던 피터슨은 현실적인 결론을 냅니다.
[번역본]...그런데 이런 일방적인 처벌이 통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유난히 고집스럽고 거칠고 모험적이어서 불량한 행위가 도를 넘어서는 아이들이다.
책임질 줄 아는 부모라면 이런 상황에 대한 대처방법까지도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직무 유기다. 궂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사람으 그 역할을 훨씬 추잡하게 수행할 것이다.
[원문]......There are some situations in which even that will not suffice, partly because some children are very determined, exploratory, and tough, or because the offending behaviour is truly severe.
And if you're not thinking such things through, then you are not acting responsibly as a parent. You're leaving the dirty work to someone else, who will be much dirtier doing it.
이런 쉬운 해결책이 먹히지 않을 것도 인정하며 그런 난감한 상황에서도 부모들은 방법을 간구할 책임있다는 거죠. 그걸 부모들이 하지 않는다면 아이가 살아가는 사회 속 미래의 누군가 더 무정한 방법으로 '처벌'할 것이기 때문이죠.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말이네요.
RULE 5 : 다섯번째 법칙 안에서는 부모가 적용할 수 있는 규칙을 5개 제시합니다.
첫째, 중요한 최소한의 규칙만 남겨라 | The First Rule: Limit the rules
필요이상의 규칙이 너무 많아지면 안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악법은 좋은 법을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을 없앤다' 라는 말도 됩니다. 아이들 (혹은 양육자/보육자)에게 너무 많은 규칙을 주면 좌절하게 됩니다.
(i.e Do not bite, kick or hite, except in self-defence. Do not torture and bully other children, so you don't end up in jail. Eat in civilized and thankful manner, so that people are happy to have you at their house, and pleased to feed you. Learn to share, so other kids will play with you. Pay attention when spoken to by adults, so they don't hate you and might therefore design to teach you something. Go to sleep properly, and peaceably, so that your parents can have a private life and not resent your existence. Take care of your belongings, because you need to learn how to, and because you are lucky to have them.
둘째, 그 규칙을 적용할 때 최소한의 힘만 사용하라 | The Second Rule: Use Minimum Neccessary Force
(※Neccessary (= 필수적인) + Minimum (= 최소한의) 인데 '최소한'만 살려진 번역에 불만인 일반인...)
위에 체벌은 어떤 사유로도 불가능하다 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에서 많이 설명되었으니 반대 부분에 대해 강조를 하고 싶네요.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더 크고 힘이 센 것이 보편적입니다. 그런 어른들이 '교육을 위해서' 라는 미명하에 폭력을 남용하기 쉽다는 점에서 굉장히 조심해야 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neccessary' (필수적) 이고, 'Minimum'(미니멈/최소한)의 힘만 사용할 것을 규칙으로 제시합니다. 불필요한 과도의 '힘'/(무력)은 훈육이라는 긍정적 목적과 멀어질 수 있고 역효과나 트라우마를 줄 수 있기 때문이겠죠.
'생각하는 의자' 나 '타임아웃'으로 충분한 교육을 신체적 폭력(이나 언어폭력)을 사용해서 훈육하려한다면 이건 이 규칙을 적용했다고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인간은 조건만 허락한다면 악해지기 쉬운 존재니깐요. 권력자의 자리에 오르면 도덕적으로 해이해지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면,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무한한 권력이 있는 부모의 위치에서도 차칫 잘못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 조심해야 되겠죠.
셋째, 부모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 Parents should come in pairs
이 규칙은 경험상 정말 절실히 실감합니다. 둘이 아등바등 최선을 다해도 이렇게 힘든데 혼자서 애를 키운다는 게 얼마나 힘들지 상상이 어렵습니다. 이 규칙에 대해 조던 피터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번역본] 육아는 힘들고 까다로운 일이다. 그래서 부모도 실수한다. 불면증, 허기, 격렬한 말다툼, 숙취, 직장에서의 불쾌한 사건 등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판단과 행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이런 일이 동시다발로 벌어지면 이성을 잃을 수 있다. 이럴 때 아이가 짜증을 내고 불평을 하면 아이와 부모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널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이런 때일 수록 의논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엄마와 아빠가 힘을 합쳐야 한다. 그래야 갓난아이가 한달 내내 밤 11시부터 이튿날 새벽5시까지 울어도 누구 하나가 나가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원문] Raising young children is demanding and exhausting. Because of this, it's easy for a parent to make a mistake. Insomnia, hunger, the aftermath of an argument, a hangover, a bad day at work --- any of these singlely can make a person unreasonable, while in combination they can produce someone dangerous. Under such circumstances, it is neccessary to have someone else around, to observe, and step in, and discuss. This will make it less likely that a whiny provocative child and her fed-up cranky parent will excite each other to the point of no return.
[자체번역 ] 육아는 힘들고 까다롭기 때문에 부모는 실수하기 쉽다. 수면부족, 허기, 격렬한 말다툼, 숙취, 직장에서의 불쾌한 사건 등 어느 하나만으로도 한 사람을 불합리하게 (혹 비이성적으로) 만들 수 있는데, 이것들이 복합된 생황에서는 아주 위험한 사람을 만들어 낼수도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다른 누군가가 곁에서 봐주고 개입하고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도발적인 아이와 그런 아이에게 질릴대로 질려버린 부모가 서로를 자극해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일이 생길 확률이 적어진다.
너무나 현실적인 조언입니다. 한편으로는 기독교 세계관적인 시선으로 인간의 나약함과 '죄성'을 지적하는 것 같습니다. (당시 저자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지만)
저 역시 화를 잘 내지 않는 성격이지만 수일 또는 수주 연속된 수면부족은 확실히 평소의 인성과 인격을 초월한 '짜증'을 드러내기 쉽다는 걸 체험했습니다. 번갈아가며 쉴 수 있는 교대가 필요합니다. 서로 의지하고 다독여주고 격려해주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줘야 겨우 이겨낼 수 있을만큼 고된 기간이었습니다. (특히 신생아를 키우던 시절)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사유리 님이 혼자 인공수정을 통한 임신과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과정을 TV에서 보지 않아도 그게 얼마나 힘들지는 알 수 있습니다. (그 선택이 과연 아이에게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큰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넷째, 부모는 자신이 냉혹하고 복수하고 싶어하고 거만하고 분해하고 화가 나고 기만적일 수 있는 지 알아야 한다. (자체번역..;) | Parents should understand their own capacity to be harsh, vengeful, arrogant, resentful, angry and deceitful.
규칙이라고 하기엔 좀 긴 문장의 핵심은 저자가 심리학적으로 부모가 인간으로서 '나약함'과 '이기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인지하도록 권유 합니다. 기독교 세계관의 단어를 차용하자면 '인간의 죄성', 제가 자주 쓰는 단어로는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잠재적 악'이 될 수 있겠네요.
이런 것들이 아이에 대한 폭력의 정당화가 되면 안되고, 그런 내재적인 위험요소를 인지했을 때만 부모로서 아이를 잘못 대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체번역] 부모가 아이 때문에 체면을 구기는 일, 아이의 불순종, 주도권/권위에 대한 도전이 '충분히' 쌓인다면 가설 속의 (이론적으로) 가장 자기희생적인 부모도 아이에 대해 불만과 분노를 갖게 될 수 있다. 그리고 진정한 처벌이 시작된다. 그런 분노(resentment)는 복수심을 키운다. 자연스레 사랑을 주는 일이 적어지고 그런 사랑이 없음에 대한 합리화는 늘어날 것이다. 아이의 개인적 발달을 위한 기회를 찾는 일은 적어질 것이고, 드러나지 않게 아이에게 등을 돌리는 일이 시작될 것이다 (정서적으로). 이런 것들은 표면적으론 정상적이고 사랑의 거짓 탈을 쓴 이면적 가족 전쟁을 위한 길의 시작일 뿐이다.
[원어] Enough embarrassment, disobedience, and dominance challenge, and even the most hypothetically selfless parent will become resentful. And the real punishment begin. Resentment breeds desire for vengeance.
Fewer spontaneous offers of love will be offered, with more rationalization for their abesence. Fewer oppurtunities for the personal development of the child will be sought out. A subtle turning away will begin. And this is only the beginning of the road to total familial warfare, conducted mostly in the underworld, underneath the false facade of normality and love.
※ Resentful, resentment는 번역하기 정말 어려운 단어네요.
이렇게 자신의 나약함 (악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부모가 서로를 바로 잡아주며 아이를 훈육할 수 있음을 이야기 합니다. 한 때 왜 우는 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아이를 달래거나 조금만 자도 깨서 울던 아이를 마주할 때의 기억도 납니다. 십수일을 잠을 제대로 못 잔 상태에서는 아이가 우는 걸 보고 안쓰럽기 이전에 '화가 나는' 자신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죠. 아이는 절대로 엄마아빠의 잠을 깨우기 위해서 깨서 우는 게 아닌 걸 알면서도 말이에요.
[번역본] 이처럼 많은 부모가 빈번하게 잘못 들어서는 길은 피해가는 게 낫다. 부모가 자신의 한계를 진실로 인정한다면, 자녀의 잘못을 마냥 포용할 만한 역량이 안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부모가 힘을 합쳐 적절한 훈육 전략을 세울 수 있다. 그러면 증오심으로 가족들이 물고 뜯는 수준까지 사태가 악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원문] This frequently-travelled path is much better avoided. A parent who is seriously aware of his or her limited tolerence and capacity for misbehaviour when provoked can therefore seriously plan a proper disciplinary strategy -- particularly if monitored by an equally awake partner -- and never let things degenerate to the point where genuine hatred emerges.
그리고 몇 번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을 질서가 없는 혼돈 속에서 나타나기 쉬운 '폭력'에 대해 경고합니다.
규칙은 마치 속박을 상징하는 것 같은 이미지가 더 강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규칙이 있다면 아이들은 규칙을 지키면서 부모를 기쁘게 하는 방법을 배워갈 수 있습니다. 또 그 규칙 안에서의 자유를 찾으며 안정적인 탐험도 가능해지죠. 어떤 규칙도 없다면 모든 걸 다 시험해봐야 알 수 있고 해도 되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구분이 어려워지기 쉽습니다. 또 부모의 인내심 역시 유한하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 갑작스럽게 폭발하게 된다면, 아이 입장에선 모든 게 자유로웠던 제약 0% 환경에서 급작스럽게 분노하고 100% 제약된 환경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면 아이는 당황스럽고 혼란스럽겠죠.
[번역본]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폭력적인 가정은 어디에나 있다. 그런 가정에는 규칙도 없고, 잘못된 행동에 대한 한계도 없다.부모는 원칙도 없이 닥치는대로 주먹을 휘두른다(오역). 그러면 아이들은 혼돈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다. 자녀가 내향적인 성격이라면 자신감을 완전히 짓밟힐 것이고 강인한 성격이라면 반항하고 저항할 것이다. 오히려 처벌이 역효과를 내며 매우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원어] Be aware. There are toxic families everywhere. They make no rules and limit no misbehaviour. The parents lash out randomly and unpredictably. The children live in that chaos and are crushed, if they're timid, or rebel, counterproductively, if they're tough. It's not good. It can get murderous.
[자체번역시도] 조심해야 한다. "유해적인 나쁜 가정"(Toxic Family*)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른 가정들은 규칙을 만들지 않고 어떤 잘못 (비행, 나쁜 품행) 도 제약하지 않는다. 부모들은 불규칙적이고 예측불가하게 아이들을 비난하고 다그친다. 그런 아이들은 혼돈 속에서 살아가며 아이들이 조용한 성격이라면 억눌려있고 (자존감이 부서져 있고), 만약 강인한 아이들이라면 역효과를 낳는 반항을 할 것이다. 그건 좋지 않다. 이건 살인적이 될 수 있다.
※번역가 님께서 lash out을 서구사회에서 더 쉽게 볼 수 있는 '다그친다/몰아새운다'의 뜻 대신 폭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단정짓고 번역하는 오류를 범한 것 같습니다...
'규칙이 없는 게 규칙이에요' 라는 말은 얼핏들으면 너무 자유롭고 박애적이지만 부모가 '부처' 혹은 '예수'가 아닌 이상, 그 무규칙이 주는 혼돈이 어떻게 위험한 요소로 작용할 지는 우려가 됩니다.
다섯번째, 부모는 현실세계를 대리하는 존재로서 행동할 의무가 있다는 것| Parents have a duty to act as proxies for the real world
(부모는) 자비롭고 보살펴주는 대리인으로서, 어쨌거나 현실세계를 대리하는 존재로서의 대리인이다.
-- merciful proxies, caring proxies -- but proxies, nonetheless.
영어표현인 Proxy는 IT용어로서만 쓰던 단어라 확 다가오지 않긴 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역시 맞는 말입니다. 부모는 아이들이 가정에서 안전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양육하는 한 편, 가정을 떠나 경험하게 될 '사회' (유치원, 학교 등)에서 아이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는 의무가 있네요.
[자체번역] 이 의무는 부모가 자녀의 행복을 보장하고 창의력을 배양하고 자존감을 높여줄 의무를 대체한다.
This obligation supercedes any responsibility to ensure happiness, foster creativity, or boost self-esteem.
아이들이 제일 먼저 경험하는 세상인 가정, 그 가정에서 부모는 아이들에게 최대한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주며 양육해야겠죠. 하지만 자비로운 부모, 쿨한 부모, 힙한 부모, 친구 같은 부모가 되는 걸 최대의 목적으로 하고 훈육과 제약하는 것을 거부한다면, 그 아이는 저자가 말한 것 처럼 현실세계에서 적응하면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이들에게는 많은 친구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부모는 하나뿐이죠."
저도 천성적으론 얽메이는 걸 싫어하지만 또 규칙의 순기능을 이성적으로 알기 때문에 스스로를 규칙에 순응하게 하는 편입니다.
한편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니 거창한 생각도 듭니다.
'온 우주와 이 세상을 만든 창조주/조물주도 온갖 물리법칙으로 이 세상을 운행하고 있는데 한낱 인간인 내가 '규칙을 세우지 않고' 아이를 양육할 수 있을까...?'
※ 조던 피터슨에 대한 오해
조던 피터슨은 한국에서는 '누구나 알 정도'의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서구사회의 진보 미디어에서는 그들이 선호하는 가치관과 반대되는 보수적인 가치관을 대표하는 인물로 갈등구도 속에서 많이 소개 합니다. 그래서 그런 언론에 많이 노출된 분들에게는 꽤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전 이 분이 유명한 지 모르고 여러 유튜브 강의와 강연을 들었는데, 조던 피터슨을 폄하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 그의 언행을 '곡해'하고 오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유튜브에선 유명한 두 개의 영상 중, GQ기자의 인터뷰 영상(조회수 5790만)이라든가, Channel 4 New의 앵커 Cathy Newman 과의 인터뷰 영상(조회수 4009만) 을 보면 어떻게 조던 피터슨을 곡해시키려고 하는 지 알 수 있었습니다. (주로 그를 성차별주의자이고 성소수자차별자이고, 성평등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처럼 포장하려 하지만 ...호락호락 당하지 않는 심리학자와 싸잡아서 왜곡하려고 하는 인터뷰어의 대결이 흥미진진합니다.)
이런 그의 육아지침과 한국의 오은영 박사가 말하는 훈육지침은 어떤 지 간략하게 비교해보며 마무리 해보려 합니다.
<SBS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무려 '기잡기 훈육 특집') 에 나온 오은영 박사의 '가르침'을 정리한 블로그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오은영 박사님은 10가지 기잡기 훈육 지침
조던 피터슨의 “최소한의 규칙만 남겨라 (limit the rule)”에 어긋난다고 느껴지기 보다는 말 그대로 지침 이기 때문에 조던 피터슨 박사는 개념적으로 이야기 한 것에 비해 오은영 박사는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세세히 지침을 정해준 것 같습니다.
저희 부모들에게는 오히려 이렇게 세세한 지침 더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모두가 좋아하는 그 말,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 동의합니다. 가정마다 환경이 다르고, 부모의 성향도 직업도 다르고, 아이의 기질과 성향도 다르니깐요. 하지만 너무 단순한 “격언”은 복잡한 현실에 적용했을 때 문제가 되기 쉽고 현실을 왜곡하기도 쉽죠.
모두에게 적용가능한 정답은 없을 수 있지만, 분명 어떤 답안은 다른 답안보다 정답에 가까울 수 있겠죠. 정답과 가장 먼 “나쁜 답안”이 존재하는 걸 부정할 수 없으니깐요.
블로그를 방문해주신 분들 중 함께 육아하는 “동지”분들이 계시다면 힘내세요~!! 하루 하루 “전투(battle)”의 승패에 좌절하기 보다는 “전쟁(war)”에서 승리하기 위해 더 지혜로운 부모가 되기 위해 화이팅 입니다~!!
3부에서는 캐나다 출신의 심리학자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많은 관점과 해석차이가 있는 심리학자인 가보 마테 박사가 공동집필한 책을 바탕으로 육아에 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이 분은 조던 피터슨에 꽤 비판적인 분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점을 비교해보는 것도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
'SPIN-OFF: 사랑에 대한 오해 > 요상(辽想)한 아빠의 육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육아특집: 3부-육아 철학/이론 비교 (조던 피터슨 vs. 가보 마테+고든 뉴펠드) - (주제: 수면교육, '타임아웃', 영유아 영상 (1) | 2022.12.20 |
---|---|
육아특집: 1부-유행하는 육아 철학 vs. 성경의 잠언 (feat. 조던 피터슨) (2) | 2022.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