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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R (Question and Response)

성경 속 헤롯왕의 ‘영아 학살 명령’ 은 역사적 사실인가?

Q. 마태복음(2:16)에 기록된 헤롯왕의 ‘영아 학살 명령’ 은 역사적 사실인가?

관련 성경 구절 
(공동번역)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였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박사들에게 알아본 때를 대중하여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여버렸다.

(개역개정)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현대인의 성경)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화가 났다. 그래서 그는 베들레헴과 그 부근에 사람들을 보내 박사들에게 알아본 때를 기준으로 하여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NASB) Then when Herod saw that he had been tricked by the magi, he became very enraged, and sent and slew all the male children who were in Bethlehem and all its vicinity, from two years old and under, according to the time which he had determined from the magi.

(KJV) Then Herod, when he saw that he was mocked of the wise men, was exceeding wroth, and sent forth, and slew all the children that were in Bethlehem, and in all the coasts thereof, from two years old and under, according to the time which he had diligently enquired of the wise men.


※ 이 주제에 대해선 웨스턴 미시간 대학 (Western Michigan University)교수 폴 마이어(Paul Maier)라는 역사학자의 인터뷰(링크)내용을 번역하여 인용합니다. 본문 하단에 요약이 있습니다.

 

Dr. Paul L. Maier Professor of Ancient History at Western Michigan University

 


"만약 고대에서 1차 자료(Primary Source/Original Source/ 사건이 발생하던 시점에 학술적으로 기록된 문서)가 가장 많은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건 예수, 바울, 시저 아구스투스, 알렉산더 대왕도 아닌, 헤롯왕/헤로드왕 (Herod the Great)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요세푸스가 두 권의 스크롤을 할애해서 그의 삶을 기록했기 때문이죠.

그는 로마와의 평화를 유지하는 업무를 잘 수행한 정치인이었습니다.

로마는 기원전 63년부터 유대지역을 점령했고, 헤롯은 기원전 40년에 ‘Client King 바지사장’ 으로 임명되서 로마의 힘을 빌려 기원전 37년부터 예루살렘의 정적(政敌)들을 쫓아낸 후, 기원전 4년 죽기 전까지 통치했는데, 그 기간동안 많은 업적을 이뤄냈습니다.

 

Remains of Inner Harbor at Caesarea Maritima (Photo by Don Knebel)

 

예루살렘의 성전을 재건했고,항구가 없던 이스라엘에 카이카세라(Caesarea)라는 도시를 12년 만에 만들어냈고, 예루살렘도 자신이 살 왕궁도 만들고, 스타디움, 극장들로 만드는 '페이스리프트Facelift', 리모델링'했습니다. 또 그가 손대는 것들은 외교적으로 다 잘됐다고 합니다. (시저도 헤롯의 충성심을 높이사서 지원해주었다고 합니다.)

한 편 헤롯은 정치적으론 성공적인 인물이었습니다만, 문제가 되는 다른면인데 나중에 그의 일생의 후반에 나타난 편집증/피해망상적Paranoid 인 모습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헤롯은 아내가 10명이 있었고, 태어나는 아들마다 1인자가 되게 하려는 권모술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ㅁ역자주:이건 중국 역사, 한국 역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왕자의 난이군요..)

 

<유대고대사> 플라비우스 요세푸스&amp;nbsp;

 

요세푸스는 <유대고대사>에 헤롯 일가에서 일어난 많은 끔찍한 일들을 묘사했습니다. 헤롯을 향한 독살시도, 형제의 난. 그래서 헤롯왕은 아들 셋은 역모죄로 의심하여 처형했습니다.

10명의 아내 중 가장 좋아한 왕비 마리암네(Mariamne)을 죽이고, 그 장모도 죽이고, 대제사장 하나도 초대하여 여리고에서 죽이고, 여러 삼촌들과 친척들도 죽입니다.

시저 아구스트는 "난 헤롯의 아들이 되느니 헤롯의 돼지가 되겠다"라는 말을 남겼다고도 하는데요. (유대인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풍습과 그리스어로 아들과 돼지(HUS 와 HUIOS)가 비슷 말장난이 된다는 점을 활용함)

요세푸스의 기록에는 말년의 마지막 몇 달 동안 피해망상이 심해진 헤롯에 대한 기록을 합니다. 유대인들 지도자들을 스태디움에 모아서 몰살시키려는 시도도 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죽으면 아무도 그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거라는 걱정에서.. 민중들에게 '울 이유'를 주기 위해서였 그들의 지도자들을 죽이려고 한 거죠.

 

<유대고대사> 알라딘 검색화면 (영어 전자책은 8천원, 한글은 두 권으로 나눠서 각 3만원대..?!) *킨들은 $1.09

 


헤롯왕이 베들레헴에 태어난 아기들을 죽일만한 인물이냐고 질문하신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경 비평가들이 자주 언급하는 요세푸스가 왜 이것을 기록하지 않았냐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이런 해석이 가능합니다.

우리 역사학자들 사이에선 이런 말을 자주합니다 :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
Absence of evidence is not evidence of absence.



(1) 첫번째 가능성

요세푸스가 이걸 듣고 나서도 사용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무렾 죽인 아기들의 숫자가 몇 백명의 아기가 아닌 12~15명 정도의 아기였을 겁니다. 그 시절 영아사망율은 이미 높았고, 12명 정도의 아기가 죽은 것이 독자들을 놀래킬만한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요세푸스가 헤롯이 죽기 직전에 한 일 두 가지 중 하나를 기록해야 한다면, 몇 백명의 유대지도자 들을 죽이려는 계획을 기록하는 걸 선택할 수 있었다는 거죠.


(2) 두번째 가능성

요세푸스가 이걸 듣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약 1500명 정도가 살고 있는 작은 베들레헴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제 보험계리학(Actuarial Study) 연구로는 베들레헴에 2살 이하의 아이가 24명 정도를 넘을 수 없고, 그 중의 반은 여아였을 겁니다. 그래서 요세푸스가 이 사건을 못 들었을 수도 있고, 기록할만한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수 있는 거죠.

이 주제에 대해서 뉴욕의 바그너 대학에서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만약 수백명의 유대인 아이들을 죽였으면 당연히 역사적인 기록을 했을 거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만약 몇 백명을 죽인 거라면요. 하지만 베들레햄 규모의 마을에서 몇 백명의 아이가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누가/루크(Luke)의 기록을 봤을 때, 루크는 이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예수의 출생이야기에 대해서 마태와 누가는 서로 베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건 좋은 일이죠. 서로 다른 각도에서 설명할 수 있으니깐요.”


전 이 인터뷰 내용(링크)을 보고 난 후, 요세푸스 <유대고대사(Antiquities of the Jews) >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태복음의 저자가 기록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요약

데이터/관찰된 현상:

마태/매튜의 기록에 존재하는 2살이하 남아 학살명령은 조세푸스의 <유대고대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해석:

(a) 유대고대사의 기록되지 않았으니 다른 목적을 가지고 추가적으로 만들어낸 신화/허구이다.
(자유신학계의 음모론적 추론, 자연주의 세계관을 지닌 학자들의 해석)

(b) 유대고대사의 기록된 헤롯왕의 인성 (즉 10명의 부인과 자식들로 인해 발생하는 권모술수로 인한 피해 망상), 그 말년의 다른 기행들 (수백명 유대인 종교리더들 대학살 시도 등)을 봤을 때, 충분히 했을 법한 일이다.

하지만 살해되었을 거라고 추정되는 영아의 수 (약12명)와 아무도 신경 안 쓰는 베들레헴이라는 촌구석에서 일어난 일이란 점, 또 수백명의 유대인 지도자들을 살해하려했던 동시점 이벤트를 감안했을 때, 유대고대사의 기록자 조세푸스가 듣지못했거나, 기록할 가치가 없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추가의견: 현대인의 감수성 혹은 자국문화중심성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오류


이 문제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는 21세기의 우리들이 간과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그건 문화적 맥락입니다.
현대인의 인권 개념과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기원전,후 1세기를 돌아보면서 놓치고 있는 게 바로 당시 로마 문화에서는 아기의 생명을 어떻게 바라봤는지가 또 다른 힌트가 될 것 같습니다.

콜로세움에서 잔인한 사람 대 사람, 사람 대 짐승의 싸움이 유흥으로 소비되던 문화 였다는 점을 우선 기억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영아살해 - 라는 이름이 주는 끔찍함은 지금 우리들이 느끼는 감정이지만, 고대 가나안 지역, 이집트는 어땠을까요?

예를 들면, 고대 이스라엘 시대 주변국가들의 종교의식(기독교 용어로 '우상숭배')에서는 영유아를 그들이 믿는 우상/신에게 받치는 문화가 있었다는 고고학적 발굴이 있습니다. 성경의 여호수아의 이야기에 나오는 여리고성 근처의 게셀(Tel Gezel)에서의 발굴을 통해서도 영아를 제물로 받치던 문화의 흔적이 나타납니다.

팔레스타인 게셀에서 발굴된 영아 제물의 유골

아래와 같은 성경구절이 있다는 게 또 위 고고학적 발굴과 연관되기도 합니다.

너는 결단코 자녀를 몰렉에게 주어 불로 통과케 말아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위기 18:21)
You shall not give any of your children to offer themb to Molech, and so profane the name of your God: I am the LORD
. (ESV) Leviticus 18:21

찰스 포서트의 일러스트레이션



구약 성경의 배경처럼 먼 과거가 아닌 약 500여년 전의 과거에서도 비슷한 일의 흔적이 있습니다. 내셔설지오그래픽에서 소개한 고고학 기사에서는 페루에서 140명 이상의 8~12세 아이들이 종교의식의 제물로 쓰인 발굴에 대해서 소개 합니다.. (아래 이미치 참고: National Geographics ->기사 링크)


그리고 꽤 유명한 발굴인 아즈텍 수도에서 발견된 수백개의 유해가 인신공양을 한 14~16세기 인류의 과거를 드러냅니다. (science.org 기사링크)


유명한 고대 철학자인 플라톤도 영아유기와 낙태가 필요하다면 허용하고 권장한 바가 있습니다.

The offspring of the inferior and any of those of the other sort who are born defective, they will properly dispose of in secret, so that no one will know what has become of them

[자체번역] 약한 자들의 후손이나 기형으로 태어난 이들은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지지 않도록 비밀리에 제대로 버려져야 한다.

-플라톤 <국가> Plato: The Republic -

 


그럼 1세기 전후의 로마는 어땠을까요?

로마 시대에 일단 '영아유기'와 '낙태'가 제국의 법으로 허용됐다고 합니다. .


(참고기사: "로마제국 시대엔 영아살해가 보편적이었다. Infanticide Common in Roman Empire NBCNEWS 기사링크)

 

Infanticide Common in Roman Empire

Infanticide, the killing of unwanted babies, was common throughout the Roman Empire and other parts of the ancient world, according to a new study.

www.nbcnews.com

 

기사에선 고고학 과학 저널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의 연구결과를 아래와 같이 인용합니다.

최근 이전까지 (영아살해)는 세계의 인류사회에서 널리 용인되어왔던 관습입니다. 현대적 피임방법 전에 엄마에게 안전한 가정 사이즈로 제한할 수 있는 얼마 안되는 유효한 수단이었습니다.

until recently, (infanticide) was a practice that was widely tolerated in human societies around the world. Prior to modern methods of contraception, it was one of the few ways of limiting family size that was both safe for the mother and effective.

애슈클론에서 죽은 거의 100명은 모두 39주-40주의 영아였습니다. 그들은 매장되지 않았고 사창가 아래를 지나는 하수구에 버려졌죠. 연구원들은 이런 피해자들(아기들)은 질식해서 죽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Nearly 100 infants all died at Ashkelon at about the same full-term age. They were not buried, but instead were cast into a sewer that ran beneath a brothel. Researchers suspect that most such victims were suffocated to death.

- Journal of Archaelogical Science-

 

기독교 초기 시절의 로마 문화에 대해서는 미국의 사회과학자 로드니 스타크의 저서 <기독교의 발흥> 이란 책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종교인이 아닌 사회과학자가 사회과학적 방법을 통해 초기 기독교가 어떻게 성공적으로 로마 제국에서 '유행'할 수 있었는 지에 대한 연구 결과로 당시 로마 문화에 대해서도 잘 설명합니다.

 

 


이런 여러 정황들을 봤을 때, 헤롯왕의 인격에 대한 기록을 참고했을 때 영아 살해를 명령했다고 하더라도 그게 경악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점, 또 당시 문화에서 영아유기가 지금처럼 범죄화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을 같이 고려한다면, 요세푸스가 굳이 그걸 기록할 필요가 없었다는 가설도 신빙성이 없어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키피디아의 헤롯왕 설명에서 언급된 의견과 같이 “모세 이야기와의 유사성과 연관 지어 '만들어낸 스토리다”라는 주장은 역사적 문맥과 배경지식 없이 그저 예수에 대한 기록을 신화로 기정하고 바라보는 시선에서 비롯된 또 다른 상상적 해석이 아닌가 느껴지기도 하네요.

확증편향은 양쪽에 다 존재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신의 존재를 믿기 때문에 예수에 대한 복음서의 기록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을 더 믿고 싶겠죠. 그런데 신이 없다고 믿는 사람은 예수에 대한 기록이 허구라고 주장하는 의견을 더 믿고 싶을 겁니다.

그리고 이 정도의 비교라면 굳이 어느 한쪽이 우세한 팩트다 ㅡ 라고 주장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네요. 한 쪽은 기록을 가지고, 다른 한 쪽은 없는 기록에 대한 해석을 통해 비교해야 하니깐요.


이 주제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 찾아보는 또 다른 질문에 대한 질문과 답변도 링크합니다. 

 

누가복음(루가의 복음서)의 인구조사가 역사에 기록된 것과 다른가요?

누가복음(루가의 복음서)에서 언급된 인구조사 (census)의 역사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PART 1 : 역사성에 대한 해석 1. 관련 성경구절 : 누가복음(루가의 복음서) 2:1~4 (개역개정) 그 때에 가이사 아구

bitl.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