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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독교말고 기독교 (Making Sense of Christianity)

1.2 현실로의 초대 Welcome to the real Reality

흑백? 그레이스케일?  Black and White? Greyscale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은 현대적이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어쩌면 우리는 세상을 흑백논리로 바라보면 경우가 의외로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종교라는 걸 생각해봤을 때, 종교인이라는 카테고리에 포함되는 사람들은 단순한 흑백논리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생각하는 한편, 종교인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도 이분법적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We like to say that binary mindset is old-fashioned yet may be we look at the world as black and white.  Especially, about the subject of religion, there might be a prejudice to see religious group as people whose see the world in the simple logic of black and white; but the view towards the religious people ifself also can't be free from the binary mindset. 

 

어쩌면 어렸을 땐 저도 그런 흑백논리가 좋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선과 악으로 구분되는 단순한 세계. Archy De Berker와 동료들이 연구한 결과(Nature)에 따르면 ‘불확실한 상태'는 인간이 전반적으로 피하고 싶어하는 상태라고 합니다. 아마 그게 썸이란 게 오래 지속되기 힘든 이유일까요.

I might have liked that kind of black-and-white logic myself when I was younger. A world divided by good and evil. There was a study by Archy De Berker (Nature) that the status of uncertainty is what most people want to avoid. Maybe that's why people couldn't stay long in temporary relationship. 

Computations of uncertainty mediate acute stress responses in humans Nature Communications, volume 7 , Article number:  10996  ( 2016 ) 

 

 경제학을 파고들 때 예측을 하고 이윤을 창출하고 싶으면서도 <블랙 스완>의 나심 탈레브와 같이 미래에 대해 확실한 것은 불확실성 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리게 한 이유일 수도 있구요 --- 적어도 그건 명확한 결론이니깐요.

Or maybe that's why Nassim Taleb said the only thing certain about the future is the uncertainty -- at least that IS a clear conclusion. 

The Black Swan: Second Edition: The Impact of the Highly Improbable: With a new section: "On Robustness and Fragility" (Incerto) Paperback – May 11, 2010 by Nassim Nicholas Taleb 

 

 

현실의 스펙트럼 The spectrum of reality 

    하지만 우리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어떤가요?

    But how about the reality we live in?

Drawing Hands, 1948 - M.C. Escher (artist)

 

하얀 종이 위의 검은 연필로 그림을 그리더라도, 그런  흑백의 세계도 자세히보면 ‘그레이스케일'로 표현됩니다. 하얀 종이도 종이에 따라 색감이 묘하게 다르고, 한 연필로 그리더라도 얼마가 세게 누르느냐에 따라 진하기가 달라지니깐요.

Even if we just draw on a white sheet of paper with a pencil, when you look at closely enough, you will see it's expressed in greyscale. The white paper differs in color based on what kind of paper, and even with just one pencil the boldness differs based on the pressure of your hand. 

 

이렇듯 이론의 세계가 아닌 현실 속에는 스펙트럼이란 게 존재합니다. 흑백의 카테고리로만 분류하면 놓치게 되는 게 너무 많아집니다. 그게 제가 언젠가 유튜브 알고리듬의 추천으로 알게 된 조던 B. 피터슨 교수의 심리학 강의 <Maps of Meaning : The Architecture of Belief> (총12강) 와 <Personality and its Transformation> (총20강)을 통해서 배우게 된 것 중 하나 입니다.

Unlike the world of theory, there is a spectrum, in the world of reality. If we categorized only by the black-and-white, we would neglect too much. That's one of the things I learned from psychology lectures of Jordan Peterson (<Maps of Meaning : The Architecture of Belief> (12 lectures), <Personality and its Transformation> (20 lectures), 

 

Jordan B. Peterson Lecture - 2017 Maps of Meaning: The Architecture of Belief (University of Toronto)

 

 

 2020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단순한 것을 좋아합니다. 심플한 디자인의 상징인 미니멀리즘이 미학적으로는 매력적이지만, 단순한 사고는 현실 속에서 안 좋은 결과를 부릅니다.
We live in 2020, and we like it simple. Minimalism is very attractive athestetically, but being simple-minded will result in bad consquences. 

 

    종교라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리차드 도킨스 같은 사람은 종교가 있는 사람들을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한 카데고리로 구분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종교인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도 적어도 4대 종교로 구분됩니다. 그 4대 종교의 세계관이 비슷할 것 같지만 다 다릅니다. 심지어 같은 종교로 분류되는 개신교 안에서도 무엇을 더 중요시하냐에 따라 갈라집니다.

    It is same for the religion. People like Richard Dawkins want to put people with religion into one category and label them as unscientific and irrational people, but within that category there are at least four major religions. And you may think the worldview would be similar, they are all different. Even within the same protestant denomination of Christianity, there are different denomination.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기본 미덕이 된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유독 종교에 대해서 단순화된 적개심을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런 적개심 자체를 종교인들이 자초한 걸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느 한 쪽에서 다른 쪽이 틀렸다고 하는 순간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게 있습니다. 그건 바로 독점성과 편협성입니다.

Respect for diversity is considered as a virtue in our modern society, but we often face a simplified anger towards religion. I do think it could be triggered by the religious people. But the moment one side claim the other side wrong, the exclusivity and intolerence occur. 

 

종교인들의 가치관이 편협적이라고 주장하는 순간, 그 주장 역시 어떤 의미에서 포용적이지 않기 때문에 편협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When you cliam reglious people are intolerent, the claim itself can only be interepreted as intolerent because it is not inclusive, and you fall into the dilemma. 

 

중요한 건, 우리가 ‘진실’이란 걸 알고 싶어할 때, 그 결론이 비록 흑백논리의 YES or NO로 명확한 결론이 날 수 있지만, 그 과정을 처음부터 단순하게 바라보면 진실이 아닌 단순화된 버전, 왜곡된 버전으로 현실을 바라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So, the important thing is even if the conclusion results in a 'Yes or No' in the sense of black-and-white, if we look at the process simplistically from the beginning, it is highly likely that we would be looking at the world in a simplified version or a distorted version, not the truth.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The Reason Why I Started This Project 

    전 종교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도 않고, 그냥 역사와 전통, 이유 없이 믿는 사회적 관습으로서의 종교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호감도 없습니다.

I don't like the word religion, and am not interested in a religion as a social convention, soley based on history and tradition without a proper reason, nor I am fond of it. 

 

‘내가 믿어 왔기 때문에 믿는다’ 라든가 ‘성경에 쓰여져 있기 때문에 성경이 진리다’ 라는 순환논리는 그냥 내부인들에게만 납득되는 이유니깐, 그 집단 밖에 있는 사람들에겐 의미가 없잖아요. 소위 말하는 교리에도 크게 관심이 없이 자라왔기 때문에 교리 보다 좀 더 본질적인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I believe it because I've been believing it' or 'The Bible is true because the Bible says so'; these fall into the category of circular reasoning, and it is only acceptable for the insider of the group, thus, meaningless for the outsiders. I haven't been interested in so-called doctrines. Rather, I have been interested in more essential things. 

전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분석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걸 좋아하고, 어쩌다보니 여러 취미 생활이 성격과 겹쳐져서 영어, 중국어, 일본어가 새로운 OS로 탑재가 되었습니다. 그게 영향을 미치는 건 모르겠지만, 한 언어로 국한된 정보가 아닌 다른 언어권의 정보와 학설에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I liked to analyse things with evidence and logic, and somehow multilingual Operating System had been embedded into me, with English, Chinese, and Japanese. I am not sure if that affected me, but I've grown up to be an adult who has easier access to the information and academic theories from the other part of the word that uses different langauges. 

    

    조금 복잡하고 거창할 것 같은 이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거창하게 말하면 세계 평화를 위해서이입니다.  추상적으로 말하면 진실에 대한 탐구의 하나이고, 미시적으로 얘기하면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누군가의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일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가 만난 사람, 만나게 될 사람, 우리의 부모님, 친척, 혹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중의 한 명에겐 그 ‘종교'라는 게 의미가 있는 무언가이기 때문입니다.

To be a little complciated and exaggerated, the reason I am writing about this issue, is for world peace. To be abstract, it is a research towards truth. From a micro-view, it could be for the peace of your family who is reading this piece.  Because that religion means something to someone we've met, or someone you will meet, or our parents, relatives, or even someone we love. 

 

    우리를 길러주신 부모님, 혹은 우리를 애지중지 해주신 지금은 살아계시지 않은 조부모님,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배우자. 혹은 내가 키웠지만 나와 다른 선택을 하게 된 내 딸/아들. 내 아들/딸이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이라며 데려올 사람이 종교가 없을 거라는 보장을 할 수 없는만큼, 나와 다른 생각을 지닌 누군가가 무엇을 믿는지, 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왜 그렇게 믿는 지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는 절대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From our parents who raised us, grandparents who loved us to the sky but not with us or the spouse I am living with, to the daughters/son whom I raised but ended up with different choice than mine..... and since we can't guarantee that the lover of our son/daughter will not have religion, at the least, it will definitely, be helpful to know what those people believe and why they think that way and why they believe so. 

 

 

글을 마치며 Outro 

    사회의 구성원을 단순하게 관점의 차이로 구분하면, 유신론자와 무신론자, 그리고 불가지론자로 나눌 수 있겠고, 그 중에 한 카데고리를 더 넣자면 ‘무관심한 사람’도 있을 수 있겠네요. 사실 과학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포지션은 ‘불가지론’일지도 모릅니다. 여러 근거들을 비교하다가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모른다'라는 결론을 내는 사람들인 거죠.

If we divide the social fabric, or the members of the society, by the perspective of this issue, we have theist, atheist, and agnostic. If I may add a relatively a new term, 'apatheistic(from apathiesm)'- who don't care. Maybe in a narrow sense of natural science, the most rational position to take must be 'agnostic'. You compare evidences but conclude that we don't know because we can't prove it. 

    

    종교를 키워드로 우리 사회를 구분하자면, 아마 적어도 다섯 가지 그룹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종교가 중요한 사람, 종교가 있었던 사람, 종교가 있는 사람을 아는 사람, 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 종교가 있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께서 어떤 카데고리에 속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글의 목표는 위 어떤 분류에 속하시더라도 다 읽으신 후에 ‘읽어보기 잘했다' 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 유익한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and if we use the religion as keyword and divide our society, we may at least get five groups-- who still thinks religion matters, who used to have a religion, who know someone who has a religion, who couldn't care less about the religion, and who hates the people with a religion. I don't know which category you would fall  into, but the goal of my writing is to make my piece  useful, to make you think 'I am glad I have read this'.

 

    글을 읽어주고 계신 여러분의 삶 속 있었던 어떤 기독교인도 제대로 설명드리지 못한 이야기를 해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10-20년 일주일에 한 번씩만 교회에서 읽는 한 두 구절의 성경을 읽어온 어떤 사람들보다 성경이란 게 어떤 건지 알게 되실 수도 있어요.

    I hope I can tell you a story that no Christian in your life can explain. Maybe just by reading mine, you may gain more knowledge than the Bible than people who have been reading a few verses once a week over 10 to 20 years. 

 

    교회를 다니시는 분께는 이성적인 신앙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시는 한편, 이상한 이단에 빠지시지 않을 수 있도록 도움이 될 것 같구요.  

If you frequently go to church, you may know what is the rational basis of your faith, and may prevent you from falling into a weird heretic cult. 

신앙을 버리신 분께서는 본인이 무엇을 버린 건지, 모르고 있던 근거들이 어떤 게 있는지를 알게 되시길 바라구요.

If you are someone who abandoned the faith, I hope you will learn what you have abandond and what evidences were there. 

신앙이 있으신 분을 지인, 친인척으로 두신 분께서는 그들의 신앙을 그저 “광기의 가능성이 있는 맹신”으로 판단하지 않으실 수 있게될 마음의 여유를 얻게 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If you have a friend or a relative who have Christian faith, you may obtain a state of peaceful mind so you don't have to disregard their faith as "a potential blind faith that can develop into fanaticism". 

 

한편, 종교에 관심이 없으시거나, 종교가 있는 사람을 싫어하시는 분께서는 이 세상의 일부를 공유하고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포용심이 조금이나마 더 생기는 기회가 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If you have apathy or hatred towards religion, this may be a chance for you to obtain a bit more of tolerence to those who we share the part of this world. 

 


<1.3 두 가지 현실 속에서 Two Realities> 에서 계속

https://bitl.tistory.com/3

 

1.3 두 가지 현실 속에서 Two Realities

#1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적어도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주관적 현실이라는 것과 개인적인 경험에 영향을 받지 않는 객관적인 현실이 존재합니다. 한 사람이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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