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차검증 프로젝트: CROSS+CHECK/과학 강의 (Reading Lecture) 한-영 대역

기독교가 과학의 발전을 막았다구요?! (1부) -MIT 이안 허친슨 교수가 말하는 과학주의(Scientism)-

지난 글에서 소개한 MIT 대학의 과학자 이안 허친슨(Ian H. Hutchinson) 교수의 강의를 듣게 되어 그 강의를 글로 남겨봤습니다.

이안 허친슨 MIT 교수

 지난 번 소개 했던 라이스 대학의 합성화학자 제임스 투어 박사 다음으로 유튜브, 팟캐스트를 듣다가 알게된 또 다른 과학자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이번엔 MIT에서 핵융합을 연구하신 핵물리

bitl.tistory.com

연구주제가 어렵기도 하고 (무려 핵융합...) 사회 분위기상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이 많이 부각된 시대라, 구글 검색을 해도 나오는 건 아래와 같은 인용 정도입니다.

“가벼운 원자핵을 융합해서 더 무거운 원자 핵을 만들어야 에너지가 방출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결합된 형태의 수소에서 발생하는 기체를 태양보다 10배 더 뜨거운 온도(1억 캘빈온도이상-섭씨로환산했을때거 의동일,화씨로환산했을때약1억8000만 도)가될때까지가열한뒤플라즈마로알려 진 뜨거운 기체를 가둬야 합니다. 이를 위해 토카막(tokamak)이라는 도넛 형태의 자성 공간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됩니다.”

MIT 산하 플라즈마 과학 및 융합센터(PSFC) 의 원자력 과학 및 공학교수인 이안 허친슨 (Ian Hutchinson)의 설명이다.

아무튼 전 똑똑한 과학자들이 종교나 신앙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졌는지 궁금해서 이런 주제로 강의를 하면 들어보곤 합니다. 스티븐 호킹의 의견을 듣고 호킹의 의견을 받아들이기 전에 다른 석학의 의견도 비교해봐야 균형잡힌 시선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죠.

아래 내용은 MIT의 핵 공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이안 허친슨 박사가 VERITAS FORUM에서 진행한 강의를 transcribe한 후, 번역한 내용입니다.

(전 사실 영어 번역을 싫어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지만 영어는 영어로 이해하는 게 편하고, 머리 속에서 한국어를 거치는 건 개인적으론 비효율적이란 생각이 들어서였죠. 하지만 한국어로 된 인터넷 세상에는 이런 정보가 많이 없는 걸 보게 되었고 영어가 불편하거나 싫으신 분들을 위해서 번역을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감히 '재능 기부'란 표현을 쓰기엔 프리랜서로 번역비를 받고 작업할 때처럼 2차 3차 검수를 진행하지 못해 번역의 퀄리티가 아쉽습니다. 하지만..전 직딩+육아대디 이거든요. 시간이 없어요 ㅠㅠ ) 영어 원문을 남기는 이유는 영어 공부 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원래 의미를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서 입니다.

그럼 각설하고 이안 허친슨 박사의 강의 내용을 읽어보시죠~


Can Science and Faith Coexist? | Dr. Ian Hutchinson, MIT

과학과 믿음(기독교 신앙)은 공존할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과학과 신앙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둘이 양립하거나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과학의 역사는 종교가 과학의 발전을 막아왔고, 궁극적으로 과학의 성공이 이를 극복했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그건 '신화(거짓 이야기)'을 받아들이는 게 됩니다.

Many people think there’s a stark choice between faith and science. That there are somehow so incompatible. That they can’t coexist. These people have heard that the history of science is is dominated by conflicts with religion doggedly opposing science’s progress but eventually being overcome by science’s success. To accept that view though, is to accept and believe a myth.

이 '신화'은 19세기에 고등교육을 세속화 하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고의적으로 퍼뜨려졌습니다. 이 신화의 '챔피언'은 유명한 <과학과 기독교 신학의 전쟁사 (A History of the Warfare of Science with Theology in Christendom)>를 저술한 안드레 딕손 와이트 /A.D 화이트 (A.D White)입니다.

This myth was deliberately promulgated in the 19th century as as a part of a campaign to secularize higher education.. This gentleman is Andre Dixon White, who was the supreme champion of that myth and he wrote a very famous book called a history of the Warfare of Science with Theology in Christendom.

이안 허친슨 교수 강의 슬라이드 중 , Veritas Forum 중&nbsp;

하지만 그 '신화'는 많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고, 과학사의 역사가들을 통해 지난 몇 십년간 틀렸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과학적 혁명의 기초에는 독실한 신앙을 지닌 기독교인들이 있었고 그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But the myth including the errors. Many errors, of A.D White have been thoroughly debunked by historians of science during the past few decades. The Truth is that people of deep Christian faiths were instrumental in the founding of scientific revolution and highly influential in its development ever since.


[3]

전 MIT에서 왔습니다. MIT는 미국에서 최고인 과학과 기술의 신전라고 할 수 있죠. 어쩌면 은하계 안에서도 말입니다. 그리고 '신전'에 걸맞게, 건축물에는 그리스 신전과 같은 기둥들이 있습니다. 만약 이게 정말 그리스 신전이었다면 기둥 윗쪽엔 (신화 속의) 신들의 술 취한 향연이 묘사되어 있겠죠. 저희 MIT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대신 과학과 기술의 역사의 위대한 영웅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생략)

I come from MIT. MIT is, if you like, the high temple of Science and Technology, the best in the US, and perhaps, the galaxy. And as befits a temple , it has pseudo Greek temple architecture including fluted columns and at the top of the fluted columns, it this were truly, if we were truly in a Greek temple, there ought to be the back alien freezes of the drunken orgies of the gods. We don’t have those at MIT. Instead what we have are the names of the great heroes of science and technology over history. (Some would say drunken orgies take place across the river in the fraternities).

몇 년 전 과학 우리는 역사 속 과학의 영웅들에 대해 평가해보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MIT 건물 위 이름들의 주인공들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어려운 추측이지만 그 비율은 50~60%였습니다. 이게 제가 말하고자 하는 첫번째 포인트 입니다.

Well, a few years ago, we tried to make an assessment of what fraction of the great heroes of science over history. As represented by the names on the architecture of MIT were, Christians. It’s a hard estimate to make, but the estimate we came up with was something like 50 or 60 percent. So that’s the first point I’d like to make.


[4]

현대 과학의 발달의 첫 몇 세기의 가장 영향력이 있는 (자연)과학자들의 높은 비율이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여기(슬라이드) 작은 부분만 나열했는데, 물리 과학의 거인들은 깊은 신앙을 지닌 이들이었습니다.

Serious Christians believers were a high proportion of the most influential natural scientists in the first few centuries of modern science’s development. And these people, such as these folks here are just small selection of the giants of physical science who were deeply committed, to their faith.

자, 그럼 '생각'의 역사에 대해 큰 질문이 있습니다. 현대 과학은 거의 기독교적인 사고가 주요했던 서구(서양)에서 자라났습니다. 시간 속의 다른 문명들 속에서도 비슷한 안정성과 번영, 그리고 기술들이 있었습니다. 중국, 일본, 인도 등과 같이요. 왜 거기에선 우리가 아는 과학이 발전되지 않았을까요?

Now then, there’s the big question, about the history of ideas.
Modern science grew up almost entirely in the West, where Christian thinking hell sway(?). There were at that time civilizations of comparable stability, prosperity, and in many cases technology. In China, Japan, India and so on. Why did they not develop science as we know it.

만약 A.D 화이트가 주장하는 것처럼 기독교 교회의 반대가 과학의 발전을 몇 백년간 막고 있었다고 하면, 왜 다른 문화에서 과학이 급속히 발전되지 않았을까요?

If it were true as A.D White claimed that the Christian Church’s opposition had stunted scientific development for hundreds of years. Why didn’t science rapidly evolve in these other cultures?

[5] 서구의 성경적 세계관이 과학을 억압하는 압력이 아닌 과학이 성장할 수 있는 문화적, 철학적 토양이었음을 입증하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 있습니다.

A cogent case has been that far from being an atmosphere stifling to science, the biblical worldview of the West proved to be the fertile cultural and philosophical soil in which science grew and flourished.

기독교 신학이 과학적 태도에 기여한 부분은 다음을 포함합니다.

The ways in which Christian theology contributed to scientific attitudes include these.

자유로운 우발적 창작은 안락 의자 철학이 아닌 실험적 연구가 필요합니다. 좋은 창조물은 연구 할 가치가 있으며, 세계 자체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신성을 침해하지 않고 조사해도 안전합니다. 인간에게 책임이 부여된 세상은 연구에 대한 의무를 부릅니다. 신을 반영하는 우리의 이성은 우리가 창조물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고 안정적인 '입법자'로서의 신은 우리에게 세상이 운용되는 보편적 법칙을 찾도록 이끕니다. 경험과학의 업적에 대한 이런 철학적, 신학적 격려와 실용적 지식으로 인류에게 기여하려는 기독교적 사랑의 동기. 바로 이것들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진정한 혁명으로 이끌었습니다. 그게 제 두번째 포인트 입니다.

A free contingent creation requires experimental study, not just armchair philosophy a good creation is worthy of study, a world that is not itself God is safe to investigate without violating the divine. A world for which humans have been given responsibilities, calls for study as a duty. Our rationality reflecting God gives optimism that we can understand the creation. And God’s role as a steadfast lawgiver leads us to seek general laws that govern the world. These are philosophical and theological encouragement to the work of empirical science and when combined with the impulse of Christian charity to benefit humankind through practical knowledge. They led to a true revolution in understanding the world so that’s a second point.

[6]
지난 수년간 저는 학계의 기독교인들과 교류를 통해 그들의 (학계의) 지위('랭킹')이 낮지 않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만약 과학자들이 과학과 신앙이 공존할 수 없다고 예측한다면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아야 하죠. 실제로 그들은 굉장히 두드러집니다.

I observed over the years in my interactions with Christians in academia that far from scientist being weakly-represented among the ranks of the faithful, as one would expect if science and faith can’t coexist. Actually, they’re strongly over-presented

그리고 사회학적 증거도 같은 걸 보여줍니다. 이 주제는 (프린스턴 대학교의 사회학자인) 로버트 우쓰나우(Robert Wuthnow)와 같은 저자를 통해 체계적으로 연구되었습니다. 그는 미국 인구 전체 중 (기독교인의) 비율과 학계 내의 신자의 비율을 봤을 때는 보편적으로 (그 비율이) 낮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학계 안에선, 과학 분야에서의 과학자들이 기독교일 확율은 비과학 분야에서의 확율보다 더 높았습니다.

아래 슬라이드 참고: 신을 믿지 않음 - 사회학 41% , 인문학 36%, 과학 20% | 종교에 관심없음 - 사회학 49%, 인문학 46%, 과학 38%. 만약 과학과 신앙의 대립(전쟁)이 '불신 (신을 믿지 않음)' 의 주요 원인이라면, 반대의 추세를 예상할 수 있다.)

and the sociological evidence shows the same thing. It’s been studied systematically, for example by Robert Wuthnow whose data I am showing here. He established that while it’s true that academics generally are believers in lower portion than the u.s population as a whole. Nevertheless, among academics, scientists were proportionally at least as likley to be Christians and often more likely to be Christians, than those in the non-scientific disciplines.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과학과 신앙이 공존할 수 없다는 (잘못된) 인식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과학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신앙으로도 (그 관점은) 지지 되지 않죠.

So History doesn’t support the perceived problem of coexistence between science and faith. Nor is it supported by the prevalence of faith among scientists.

기독교는 '비옥한' 성경적 세계관에서 자라났고, 주로 기독교 개척자들을 통해 세워졌고. 아직도 기독교인들을 그 대열로 이끕니다.

Christianity grew from a fertile biblical worldview, founded by prodominantly Christian pioneers. and still attracts Christians into its ranks today.

그러면 문제는 어디에서 발생하는 걸까요?

So where does the perceived problem come from?

부분적으로는 오해로부터 옵니다.

It comes, in part, from misunderstanding.


[8]

(유신론을 반대하는) 반-신론자들은 여러분이 증거에 입각하거나 어떤 권위를 믿음의 근거로 삼을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들은 자신의 세속적인 의견은 이성적이고 증거에 입각하다고 말하고, 종교인들은 비이성적인 광신도로서 믿고 싶은 걸 믿거나 그저 배운 대로 믿는대로 믿는다고 말합니다.

Anti-theists say that you can either base your evidences, or you can base them on faith in some authority. Of course, they say their secular opinions are rational, based on evidences, while religious people are some kind of irrational faithheads, whoever just believe whatever they like, or whatever they're taught.


하지만 그건 말도 안됩니다.

But this is nonsense.


기독교적 믿음은 의심이 없거나 증거가 없지 않습니다. 첫번째 기독교인들은 눈으로 그 증거를 봤습니다.
그들은 갈릴리의 길을 나사렛 예수와 걸었고, 그의 가르침을 들었고, 그의 치유(의 기적)을 보았고,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보았고,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활한 그를 봤습니다.

Christian belief is not without doubt or against the evidence. The first Christians had the evidence of their eyes. They had walked the roads of Galilee with Jesus of Nazareth. And heard his teaching, seen his healings, watched him crucified, and over 500 hundreds over them had seen him resurrected.


그게 그들의 증거였죠.

And that was their evidence.


충분히 설득된 그들은 예루살렘에서부터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자신들이 경험한 것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또 자신들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With sufficiently pursuasive, to them, that they spread out from Jerusalem. And many cases sacrificed their lives, in order to tell others what they expirienced. Those who heard them had their own experiences of Christ.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믿음'이 증거나 이성에 반대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은 '믿음'이 우리가 불확실함을 마주했을 때, 혹은 이성이 모든 답을 줄 수 없는 많은 경우를 마주 할 때보여야 하는 반응이라고 가르칩니다.

So the Bible doesn't teach that the faith is the opposite of evidence or rationality. It teaches that faith should be our response in the face of uncertainty. Or in the very frequent situation, where rationality can't give all the answers.


성경은 역경과 도전을 마주할 때 신(하나님)을 신뢰한 사람들의 행위를 믿음의 예로 보여줍니다. 그들은 그들이 아는 것에 대해 충실했습니다, 그들이 모르는 부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구요.

The Bible sites as examples of faith the acts of men and women who trusted God through adversity and challenge and were loyal to what they knew, even though there's much that they didn't know.


그리고 여러 세기를 거쳐 교회는 증거를 탐색했고 또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지적인 이해가 배움과 학문의 중심인 대학교를 설립하도록 고무했습니다.

And down through the centuries, the church sought and found evidence, and intellectual understandings, which inspired it to found universities, centers of learning and scholarship.

믿음이란 단어에 대해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에 대한 이해를 발전 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믿음(faith)란 단어는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세 가지 종류로 요약할 수 있죠.

(1) 어떤 전제를 믿는 것
(2) 사람이나 어떤 사물에 대한 신뢰
(3) 어떤 사람이나 사상에 대한 충성

So we need to develop a better understanding of what faith is.
The word Faith, has several different meanings. They can be summarized by three different types.

(1) belief in prepositions
(2) confidence, trust in person or thing
(3) and loyalty to some person or ideal


그리고 기독교에서 위 세 개의 의미 모두 중요합니다.
사실 강조를 하고 있는 건 두번째와 세번째 의미이죠.

and in Christianity, all three meanings are important.
Actually the emphasis is on the second and the third meaning.


이 믿음이란 단어가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단어가 아님을 주의해주세요. 이건 세속적인/일반적인 단어가 될 수 있습니다.

Notice though, that Faith is not inherently religious. It can be secular.

전 제가 오늘 아침 보스턴에서 이 곳에 오기 위해 탄 비행기에 대한 신뢰라는 의미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전 또 제 아내에 대한 신뢰라는 의미의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충성/충실의 의미로 믿음을 가지고 그녀를 대합니다.

I had faith, in sense of trust, in the airplane I flew on from Boston this morning.
I also have faith, in sense of trust, in my wife. And I try to act in faith, in sense of loyalty, towards her.


물론 맹신()이란 건 존재합니다. '빌리비즘believe-ism'이라고 불리기도 하죠.
그런 종류는 '왜 그걸 믿어?'라고 질문받았을 때, '난 그냥 믿어' 라는 답 밖에 주지 못하죠.

There is such a thing as blind-faith, that's sometimes called believ-ism.
That's kind of things when asked 'why do you believe it' , the only answer that's given is "i just believe it that's all'.


하지만 기독교인/크리스천들은 맹신을 위해 부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증거의 지지를 가진 신/하나님과의 관계를 일관성 있게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불확실할 때도 우리가 아는 것에 대해 증거가 모자를 때도 말이죠.

But Christians aren't called to blindfaith. They are called out to live consistenly, a relationship with God that has evidential support, even when there's uncertainty and what we do know fall short of proof.


권위는 오늘날 자주 폄하되곤 합니다.

authority is a related concept that's often disparaged today.


많은 사람들의 종교적 믿음이 종교적 권위를 받아들이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는 건 사실 입니다.
그렇다면 권위 자체가 문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

It's true that religious beliefs of many people, are founded upon acceptance of what they are taught by religious authorities. Is it then the authority is the problem?
Not really.


왜냐하면 과학적 믿음에 적용시켜봤을 때도 과학적 권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고, 과학자들조차도 마찬가지입니다

Because it's just as true that their scientific belief is an acceptance of the teachings of their scientific authorities, for most non-scientists, and even for scientists.


과학자체에도 많은 '믿음'의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 세상의 일관성, 혹은 다른 과학자들의 진실성에 대한 신뢰, 혹은 리서치 그룹 혹은 가까운 동료에 대한 신뢰가 그렇죠.

Because there are many elements of faith in science itself. For an example, belief in the consistency of the world, or trust in other scientists' truthfulness and loyalty to a research group, or close collaborators.


만약 우리가 '믿음'이란 단어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믿음이 과학 자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알아차릴 겁니다. 그리고 비전문가들의 수용에도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믿음과 과학의) 공존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기 시작할 겁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과학에 대한 오해로부터 옵니다.

And if we realize, that faith rightly understood, plays a vital role in science itself. and its acceptance by non-experts. And we begin to solve the perceived problem of coexistence.
But the perceived problem of existence comes from the misunderstanding of the science.

과학이란 단어에 대해

제가 의미하는 과학은 자연과학 입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질학, 우주학 등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아주 예전엔 이 과학(Science)이란 단어의 의미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혼돈이 생깁니다.

What I mean by science is natural science. Sorts of things that are discovered by physics, chemistry, biology, geology, and comsomolgoygy and so on. But a lot of confusion arises, because long ago, that was not the meaning of science.

18세기에 이 단어는 어떤 체계화된 지식을 뜻했습니다. SCIENTIA 라는 라틴어의 의미는 '지식'입니다.

18th centruy, the word was used to mean any systemetic knowledge, after all, the meaning of the latin word, SIENTIA, is just knowledge.

하지만 오늘날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과학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 자연과학을 의미합니다.
자연과학은 놀라운 성공과 자연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능력과 자연과학이 낳은 강력한 기술을 바탕으로 엄청난 인식론적 명성을 얻었습니다.

But today, when using the unqualified word Science, most of the people mean, and I mean, Natural Science. It is natural science that has gained enormous epistemological prestige, based on its amazing success, in describing the world of nature, and the powerful technologies, it has spawned.

과학의 특징

과학은 그 지식을 얻기 위해 의지하는 전략은 각기 다른 사람들이 반복된 실험이나 관찰을 통해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하는 재현가능성(reproducibility) 있습니다.

The particular strategy that science relies upon, to obtain its knowledge, are reproducibility, that different people can get the same result from repeated experiment or observations.


그리고 설명적 명료성/명확성 (descriptive clarity)에 대한 강조성입니다. 그 해석은 그렇지 않을 수 있겠지만, 모든 다른 과학자들이 동의하고 이해할 수 있는 모호하지 않은 방법으로 표현됩니다. 측량/측정처럼 말이죠.

And insistence upon descriptive clarity, so the result of an experiment, even if perhaps not its interpretation, are expressed in unambiguous ways that all other scientists can agree upon and understand. And that often means, for example, measurement.




[12]

만약 더 자세한 걸 원하신다면 제 책 Monopolizing Knowedge 를 읽어주세요. 이 강연의 shameless광고 시간입니다. 과학주의에 대한 조사에 관한 책입니다.

If you want more details, please read my book, Monopolizing Knowledge. this is the shameless advertising section of the talk. It's an examination of scientism.

과학주의는 진정한 지식은 과학 뿐이라는 믿음입니다.

scientism is a belief that science is all the real knowledge there is.

과학주의는 지난 몇 백년 간 우리 사회와 학계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주의는 명시적이기 보단 암시적/암묵적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과학주의에 대한 결속을 선언하지 않고, 주로 암묵적으로 가정됩니다.

scientism has been enormously influencial in our society and in academy, in past couple hundered years. But scientism is usually implicit rather than explicit. In other words, people don't often get up and just declare their ligions to scientism, more often they presume it implicitly.

슬라이드에서 보다 명시적인 예를 들겠지만 지금 세기에 암묵적인 과학주의 공격적 무신론자들을 통해 무르익었습니다. 리차드 도킨스의 예를 들면, 그의 책 '만들어진 신 (God Delusion)'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습니다 :
"예수가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렸나요? 자신이 십자가형을 당한 3일 후 살아났나요? 우리가 체험을 통해 발견할 수 없지만 이런 질문에 대해 답이 있습니다. 그리고 엄격하게 과학적인 대답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오직, 그리고 순수히 과학적인 방법만을 사용해야 합니다. "

I will give examples of more explicit scientism in viewgraph, but implicit scientism ripe in the militant atheists of the century. for example, Richard Dawkins, in his book God Delusion, writes as follow:
"Did Jesus raise Lazarus from the dead? Did he himself come alive again, three days after being crucified? There is an answer to every such question whether or not we can discover it in practice. And it's strictly a scientific answer. The method we should use to settle the matter, would be purely and entirely, a scientific method. " -

부활은 과학적 주장이 아닌 역사적 주장입니다.

Look, the resurrection is not a scientific claim, it's an historical claim.


(1부 끝. 2부에서 계속)

'오직 과학', 과학주의(Scientism)에 대해 (2부)- MIT 이안 허친슨 교수

1부에 이어 계속 '오직 과학', 과학주의(Scientism)에 대한 고찰 (1부)- MIT의 이안 허친슨 교수 지난 글에서 소개한 MIT 대학의 과학자 이안 허친슨(Ian H. Hutchinson) 교수의 강의를 듣게 되어 그 강의를

bitl.tistory.com



강의 출처: Can Science and Faith Coexist? | Dr. Ian Hutchinson, MIT | The Veritas Forum at the University of Virginia

Dr. Ian Hutchinson, a nuclear engineer and physicist at MIT, discusses the sometimes tense relationship between faith and science while challenging scientism. The Veritas Forum at the University of Virginia: Can Science and Faith Coex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