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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검증 프로젝트: CROSS+CHECK/과학 강의 (Reading Lecture) 한-영 대역

기독교가 과학의 발전을 막았다구요?! (2부)- MIT 이안 허친슨 교수 (feat. 리차드 파인먼)

1부에 이어 계속

 

'오직 과학', 과학주의(Scientism)에 대한 고찰  (1부)-  MIT의 이안 허친슨 교수

지난 글에서 소개한 MIT 대학의 과학자 이안 허친슨(Ian H. Hutchinson) 교수의 강의를 듣게 되어 그 강의를 글로 남겨봤습니다. 이안 허친슨 MIT 교수  지난 번 소개 했던 라이스 대학의 합성화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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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과학이 아닌 지식의 예 - 과학주의적 전제에 대한 반론 -

 

(예수의) 부활사건이나 쥴리어스 시저가 기원전 44년 로마 원로원의 계단에서 칼에 찔려 같은 역사적 주장에 대한 진실성을 입증하는 방법은 당연히 온전히 과학적 방법이 아닙니다.

The way you establish the truth of a historical claim, like the resurrection, or for example, that Julius Caesar was stapped to death on steps of Roman Senates on the 15th of march, 44 BC. of course, not, quote, purely and entirely scientific methods", no.


우리는 이런 주장에 대해 합당한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찾는 역사적 주장에 대한 증거는 과학적 증거가 아닌 역사적 증거 입니다. 대부분 문서적 증거나 인적증거(人的證據), 목격자 증언이 되겠죠. 혹은 고고학적 증거,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사건이 일어났던 역사적 배경, 당시 사람들의 태도, 사고를 포함한 일반적인 이해를 지닌 관점/시점을 취합니다.

We need to use the method that are appropirate for the claim being made , the evidence we seek for historical claim isn't scientific evidence. It's historical evidence, that are predominantly, things like documents evidence, personal, even an eyewitness testimony. Perhaps, archeological evidence, and all gathered together, taking a vantage of a general understanding of what makes people tick and of the attitude, thinking, and background history of the times which the event occured.


이 맥락에서 과학주의가 왜 그리 중요한 이유는 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종교가 비이성적이라고 말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Now the reason why the scientism is so important in the present context, is that the critiques of the religion are fond of saying, that the religion is irrational, because there is no evidence for God.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건 '과학적인 증거'가 없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의 주장에 대해서는 충분한 역사적 증거가 있습니다.

But what they're really saying is that there's no scientific evidence. There are plenty historical evidence. of the claims of Christianity.


저도 (전반적인) 역사와 기독교의 진실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확립하지 못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제 입장은 과학은 (당연하게도) 유일한 앎/지식이 아니라는 겁니다. 과학은 앎/지식을 향한 유일한 길이 아닙니다.

I agree, that the history and the truth of Christianity, cannot be established scientifically. But my position is that science is obviously not all knowledge. it's not the only route to knowledge.


제 생각엔 과학주의는 단순한 '실수/오류' 입니다.

I think scientism is simply a mistake.


과학과 믿음(기독교 신앙)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해명은 무언가를 알기 위해선 여러 가지 길(방법)이 있다는 것이고, 과학은 그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겁니다. 만약 우리가 과학을 지식을 독점하는 지위로 승격한다면, 종교를 약화(격하)시키는 건 물론, 역사, 철학, 문학, 법, 예술과 같은 다른 학문도 약화시킵니다.

And the most important clarification, in understanding the relationship between science and faith, is to recognize that there are many different routes knowledge, and science is just one of them. If you artificially, elevate science, into a monopoly of knowledge, and yes, you undermine religion, but you also undermine non scientific other displines, like history, or philosophy, or literature, or Law, or the Arts, and so on.


[14] Scientism is the biggest barrier to coexistence


과학주의가 이 (과학과 기독교 신앙의) 공존에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과학주의가 과학이 아닌 다른 학문들이 과학이 되어야 한다고 오도하고 있습니다. 과학주의가 어떤 과학자들이 (자기 분야 밖에서) 도를 넘어서 과학이 종교를 반박한 척 합니다.
그리고 크리스천들이 과학적 지식이 없는 (모든) 빈칸이 채워져야 한다고 오도/오해하게 합니다.

이런 태도들이 공존을 어렵게 합니다.

So scientism is the biggest barrier to coexistence. It misleads many that nonscietific disciplines need to be turn in to science. It misleads some scientists to over-reach. and pretend that the science has refuted religion. And misleads Christians, into thinking gaps in scientific knowledge ought to be satisfaction.

These attitudes undermine coexistence.

이 과학주의 해독제는 과학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지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특히 어떤 현상에 대한 다른 설명은 다른 차원에서 동시 유효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Now, the key, antidote to scientism, I believe, is to realize, that science is not all the knowledge there is, in particular, that different description of phenomena, at different levels, can simulatenous, be valid.

자연과학에선 굉장히 보편적인 것이지만 설명될 필요가 있습니다. 과학의 운용 전제이기도 한 개인적, 목적과 관련된 설명을 배제한 과학적 묘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적이고 개인적이고, 목적성에 관련된 설명이 존재하고, 이것들은 모두 동시에 사실일 수 있습니다.

This is a common place within the natural sciences, but it also needs to be advocated, for the levels of descriptions that go beyond science. That can be scientific descrpition which avoids personal, purposeful explanation, as operational presuposition of science. And there can be human, personal, and purposive explanations, all of which, can simulatenous be true.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 한 사람을 가정해봅니다.

To illustrate this, consider a human person.

 

보완 설명 또는 관점 Complementary Descriptions or Perspectives


여러분께선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 저는 나는 양자 색 역학과 전기 약한 힘을 통해 상호 작용하는 전자와 쿼크의 집합체입니다.
  • 저는 다양한 화학 원소, 수소, 산소, 탄소 등의 혼합물입니다.
  • 저는 유전코드로 가이드 되어 협조하는 생물학적 세포들 입니다.
  • 저는 바이오 에너지로 구동되는 생화학적 '기계' 입니다.
  • 저는 따뜻한 피와 털이 있는 목적이 있는 포유류 입니다.
  • 저는 의식과 (적어도 조금은) 지능이 있는 인간이 입니다.
  • 저는 남편이자, 애인이자, 아버지이자, 선생(교수)입니다.
  • 저는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입니다.
  • 신(하나님)에게 사랑 받는 불멸의 영혼입니다.
you may say
I am an assembly of electrons and quarks interacting through quantam chromodynamics and electroweak forces.
I am a mixture of wider variety of chemical elements, hydrogen, oxgen, carbon, etc.
I am a wonderful assembly of coopearating cells guided by genetic does.
(이하 생략. 슬라이드 참고)

 

[16]
이것이 제가 기독교 신앙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다른 종류의 많은 이유들에 평가를 기반합니다.
신(하나님)을 믿게 하는 이 이유들의 대부분은 '과학적'이 아니지만, 논리적이며 이성적입니다.

Here's why I say my Christian faith is reasonable. It's based upon an assessment of many different types of reasons. Most of the those reasons, for belief in God, are not scientific, but they are, nevertheless, logical, and rational.


개인적으로 (여러 이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사적 증거와 개인적인 종교적 체험입니다.

The most important type of reason, personally, are combination of historical evidence, and personal and religious experience.


그래서 제 신앙은 재현가능한 과학 실험의 확실성이 아닌 경험에 기반합니다. 그래도 그것이 신앙을 무시할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저는 살아있는 거의 모든 순간에 개인적 선호와 충동을 넘어서 최소한의 근거만을 가지고 크고 작은 결정들을 합니다.

So my faith is based on experience, but not the certainty of reproducibile scientific experiments. Still, that's not a reason to discount it. Because like everyone else, I make small and large decisions almost every moment of my waking life on minimal evidence beyond personal preference and impulse.


그것이 지각이 있다는 거죠

that's what it means to be sentient.

역사를 돌아봤을 때, 완전한 정보가 없고 심지어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결단력과 헌신을 하고 용감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그럴듯하지만 '입증되지 않은' 세계관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건 '믿음에 근거하여' 행동한다는 거죠.

If history is any judge, it is people who act boldly with determination, and committment, even in the face of risk, and absence of complete information who are successful in the world. and such peoplle are called men and women of action. They act accordance with the view of the world plausible but unproven. That is they act on faith.


제 생각에 제 종교적 믿음은 단순히 같은 원칙을 하나님과 영혼에 대해 적용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and I think my religious faith is simply, the same principle, applied to matters of God. And the spirit.

그게 기독교 신앙의 전부는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은 수백년을 걸쳐 신앙/믿음을 통해 신(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같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해왔습니다.

That's not all or everything, that the Christian faith is. Because the Christians over the centuries, have experienced by faith, what its takes to be a personal relationship to God.


[next]

아서 스탠리 에딩턴 (Arthur Stanley Eddington)

20세기 위대한 천체물리학자, 은하계와 행성 내부의 구조를 발견한 사람


그는 자기 관점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 인간 친구의 경우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깁니다....우리는 서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고안된 철학적 주장을 읽을 수 있고, 심지어 그런 주장에 설득될 수도 있습니다 --- 그리고 그 이상한 결론에 대해 함께 웃을 수 있겠죠. 바로 그런 '안전감'이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추구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and he put his view like this:
"In the case of our human friends we take their existence for granted ... we could read philosophical arguments designed to prove the non-existence of each other, and perhaps even be convinced by them --- and then laugh togheter over so odd a conclusion. I think that it is something of the same kind of security we should seek in our relationship with God."



[next]

과학은 우리에게 익숙한 '우정'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니죠. 명백히 아니죠.
과학적 방법은 그 주제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과학이 우정을 설명 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우정에 대한 알 수 없다고 하거나 우정의 실체가 없다는 걸 의미할까요?

can science eexplain even something as familiar as friendship? No. Rather obviously not.
Science's methods dont' lend themselves to that topic.
Does the fact that science can't explain friendship means, there's no knowledge or reality in friendship?

당연히 아닙니다.

Of course, not.

 



우정은 과학으로 발견하거나 설명 할 수 없는 현실(실재)입니다.
과학은 분명히 우정과 공존하며,기독교 역시 잘 공존 할 수 있습니다.

Friendship is a reality, that can't be discovered or explained by science.
Science obviously coexists with friendship, and it can coexist equally well with Christianity.

사실 제가 오늘 저녁 여러분에게 아주 간단히 보여 드리려고 한 것은 단순한 공존보다는 과학과 기독교 사이에 훨씬 더 건설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In fact, what I've tried to show you very breifly this evening, is that there is a much more constructive relationship between science and Christiantiy, than mere coexistence.


오늘 저녁엔 이 생각을 설명할 시간이 부족하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기독교 신앙이 (우리를) 과학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과학이 (우리를) 신에게 이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There is a sense, that Christian faith leads to science, and though I haven't developed this idea this evening for lack of time. There's also, a sense, which science, leads to God.


기독교 신앙은 인격, 의도, 중요성에 관해 다룹니다. 과학의 방법이 연구에서 배제하는 주제이죠.
The Christian faith concerns a personality, intension, and significance. Topics that science's methods preclude it from studying.

저같은 기독교인은 그것들이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말합니다.
Christian's like me say that those topics are actually the most important.

우주는 '인격(신)'의 창조물이기 때문입니다.
Because the universe is the creation of a personality.

그리고 그 믿음은 과학과 공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주의와는 공존할 수 없죠.
과학주의는 오류니까요.

and that belief can coexist with science.
But NOT with scientism.
But then scientism is a fallacy.

출처: The Veritas Forum (24분짜리 영상)

Dr. Ian Hutchinson, a nuclear engineer and physicist at MIT, discusses the sometimes tense relationship between faith and science while challenging scientism. The Veritas Forum at the University of Virginia: Can Science and Faith Coexist?


좀 더 자세한 강의를 보고 싶으시면 1시간 22분 짜리 강의도 있습니다.

 

※ MIT 대학의 강의를 무료로 듣고 싶으신 분들은 MIT OpenCourseWare 이란 유튜브 채널을 참고하세요. 영어공부가 필요한 이유! 

 

MIT OpenCourseWare

Whether you’re a student, a teacher, or simply a curious person that wants to learn, MIT OpenCourseWare (OCW) offers a wealth of insight and inspiration. There's videos, and a whole lot more! OCW is a free and open online publication of material from tho

www.youtube.com


소감: 과학주의자와 과학자의 차이

리차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 샘 해리스 등의 '新무신론자'들이 과학이 종교가 허구임을 증명했다고 공격적인 무신론으로 과학의 탈을 쓰고 그들의 철학을 설파했습니다. 칼 세이건, 스티븐 호킹도 역시 과학자로서의 명성을 등에 업고 그들의 '철학'을 과학적 사실인 것처럼 대중에게 알렸습니다. 철학은 죽었다며 '과학 철학(Philosophy of Science)'에 대해 얘기했죠.

하지만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리차드 파인만 (Richard Feynman, 1918-1988)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꼭 답을 알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전 모른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신비로운 우주 속에서 목적 없이 길을 잃어도요. 그게 제가 아는 한, 현실이니깐요. 이게 절 두렵게 하진 않습니다. "

But I don’t have to know an answer. I don’t feel frightened by not knowing things, by being lost in a mysterious universe without any purpose, which is the way it really is, so far as I can tell. It doesn’t frighten me.
— Richard P. Feynman
* In Richard Feynman and Jeffrey Robbins (ed.), The Pleasure of Finding Things Out: The Best Short Works of Richard Feynman (1999), 25, last sentence of Chap. 1. The chapter, with the same title as the book, is an edited transcript of an interview with Feynman made for the BBC television program Horizon (1981).


"나는 서로 다른 것에 대해 다른 정도의 확실성에 대한 대략적인 대답과 가능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아무것에 대해서 확실하지 않으며, 많은 것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난 대답을 알 필요는 없습니다."

I have approximate answers and possible beliefs in different degrees of certainty about different things, but I am not absolutely sure of anything, and of many things I don’t know anything about but I don’t have to know an answer.
— Richard P. Feynman

* Interview, in BBC TV program, 'The Pleasure of Finding Things Out', Horizon (23 Nov 1981). As quoted in Caroline Baillie, Alice Pawley, Donna M. Riley, Engineering and Social Justice: In the University and Beyond (2012), 108.

 

"과학 외의 문제를 바라보는 과학자는 그 옆에 있는 아무개만큼이나 멍청하다고 생각합니다. "

I believe that a scientist looking at nonscientific problems is just as dumb as the next guy.

리차드 파인먼 같은 천재물리학자가 자기가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겸손함을 보이는 게 흥미롭습니다.
한편 종종 마주치는 리차드 파인먼을 인용하며 '신은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의아합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께서는 과학이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설명'이란 것에 다른 레벨/깊이가 있다는 이안 허친슨 박사의 의견에 동의 하시나요?

예수의 부활이란 기적은 당연히 과학적으로 말도 안됩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역사적으로 발생할 수 없다는 결론은 과연 타당한 걸까요?

(만약 예수가 부활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면) 그건 어떤 과학적인 반응이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양자역학에 숨겨진 '부활의 법칙'을 사용해서 예수가 부활한 게 아닙니다.

그 사건이 일어났었는가 아닌가에 대한 질문과 탐구를 하기 전에,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한 전제 입니다. 바로 이 세상이 '비물질적 초월자'가 개입할 수 있는 '폐쇄된 시스템 closed system'인지, 아니면 '열린 시스템 open system'인지에 대한 믿음이죠.

'그런 일은 발생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 적이 없어' 라는 논리는 이 질문에 대한 탐구 방식에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 불가능한 일이 과거에 있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실제 발생한 적이 있는 일임에도, 위 전제 때문에 이 문제를 제대로 탐구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죠.

반대로 그런 말도 안되는 초자연적인 기적이 있었을 가능성, 0.0000000000000000000000000001%의 가능성이라도 열어두고 다른 역사적 맥락을 파악해본다면, 좀 더 의미 있는 탐구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타임머신이 발명되어 누군가 돌아가서 예수 부활 사건을 목격하고 돌아왔다는 허무맹랑한 상상을 해봅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보고 왔음에도 '기적이 일어날 수 없다'는 전제를 가진 사람에게는 이 사람이 목격하고 온 사실을 이 사람의 착각이나 환상으로 해석하겠죠.

다음 편에선 이안 허친슨 박사 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알고 좋아하는 존 레녹스 박사/교수의 강의, 토론 등을 나눠볼까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appy Easter!

 

 


옥스포드 대학의 존 레녹스 교수는 이 주제에 대해 조금 다른 톤으로 설명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교수님이라 추천드립니다. (링크)

 

존 레녹스 교수 강의 (1부) (feat. 칼 세이건, 리차드 도킨스, 리차드 파인먼, 스티븐 호킹)

오늘은 제가 참 좋아하는 학자/연사의 강의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산타클로스 같은 풍채에 유머와 따뜻한 마음을 겸비한 지성의 소유자, 옥스포드 대학 석좌 교수인 존 레녹스 박사입니다. 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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