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성서에 나온 다윗이 역사적인 실존인물일까요?
아니면 일부 사람들이 믿듯이 허구의 캐릭터일까요?
아니면 실존하긴 했지만 작가 리처드 도킨스의 책에서 주장하듯 왕이 아니라 족장 정도의 인물이었을까요?
아니면 한겨례신문 선임기자님의 시리즈에서 말하는 것처럼 정치적 목적을 정당화하고자한 후세가 기록한 허구일까요?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존재할까요?
4부에 이어
성서고고학계의 미니멀리스트 학파 의견
그럼 3-4부의 발표의 반대 주장을 펴는 사람은 없을까요? 당연히 있습니다. 강의 내용 중에 미니멀리스트 학파의 시대에 따른 태세 변화를 보셨겠지만, 그들은 승복하지 않습니다.
ㅋ히르벳 케야파의 발견 이후에도 다른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요세프 가핑켈 교수의 말처럼 실질적 근거가 없는 '다른 가능성'을 제시할 뿐인지 살펴보겠습니다.
2012년 텔 아비브 대학의 이스라엘 핑켈스타인 (Israel Finkelstein)의 논문 (제목: Khirbet Qeiyafa: An Unsensational Archaeological and Historical Interpretation) 에서 제시된 '히르벳 케야파'의 거주민은 유다왕국의 히브리민족이 아니라는 가능성은 요세프 가핑켈 교수의 강의 내용에 언급된 근거로 반박이 된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핑켈스타인은 2014년 또 다른 책을 출간합니다.
제목은 <The Forgotten Kingdom: The Archaeology and History of Northern Israel> (번역: 잊혀진 왕국: 북 이스라엘의 고고학과 역사)
한국언론 한겨례 신문 기사의 평가
한겨례 신문의 정의길 선임기자님의 기사는<성서가 고고학 시험을 본다면 낙제점>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해 내용을 읽기도 전에 어떤 뉘앙스인지 가늠이 됩니다.
“발굴된 것들에서 내가 이해하기로는, 거대한 영토를 통치하는 위대한 통일왕국에 대한 여하한 증거는 없다. 다윗왕의 예루살렘은 당시 빈촌에 불과했다.” 2000년 7월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 ‘역사로서의 성서, 새로운 고고학적 시험에서 낙제’라는 제목의 기사는 이스라엘 메기도(성서의 아마겟돈)에서 고고학 발굴을 수행한 텔아비브대학 고고학연구소장인 이스라엘 핑켈스타인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
2020년 11월 한겨례 기자님은 히르벳 케이야파의 발굴 이전 시점인 2000년 7월의 <뉴욕타임스> 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기사를 시작합니다.
근대 들어 이성과 합리주의가 신을 부정하자, 성서 내용을 역사적으로 실증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성서의 무대인 팔레스타인 땅에서 근대과학인 고고학을 적용해, 성서 내용을 역사적으로 실증하려는 ‘성서고고학’이라는 학문이 나온 배경이다. ......(중략)...... 성서 기록을 실증하겠다는 목적 아래 발굴품을 예단에 끼워 맞추는 작업이었다. 따라서 모든 발굴 성과는 성서 내용으로 수렴됐다.
아무리 예단하더라도 발굴 성과가 성서의 내용과 부합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게 당연합니다. 성서에 부합하는 고고학적 지리학적 근거들이 발굴이 되니깐 이 학문이 계속되는 겁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고고학적으로 아틸란티스라는 잃어버린 대륙을 만들어내려고 해도, 근거가 없다면 그 학문이 제대로 유지 되기 어려우니깐요. 또, 위 논리는 그 반대학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성서 기록을 반증하겠다는 목적 아래 발굴품을 예단에 끼워 맞췄는지 아닌지를 봐야겠죠.
주류 고전학파가 성서 기록의 역사성을 주장하는 열쇠였던 가나안 정복설은 이미 20세기 초기부터 독일 알트-노트 학파의 도전을 받았다. 알브레히트 알트와 제자 마르틴 노트는 이스라엘 기원은 평화적인 이주에 있다고 주장했다. 1979년 미국 뉴욕신학대학의 노먼 갓월드가 <야훼의 부족들>에서 이스라엘 기원은 내부 봉기에 있다는 내부 기원설을 내놓으면서, 주류 고전학파의 정복설은 무너졌다. 2000년 전후 핑켈스타인 등 고고학자들은 결국 주류 고전학파의 아브라함 역사성, 이스라엘 정복설, 솔로몬 통일왕국 등 기존 학설을 거의 무력화했다.
주장엔 근거가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기사에선 "도전을 받았다", "주장했다", "내부 기원설을 내놓으면서... 거의 무력화했다" 라는 표현 사용합니다. 요약하면 어떤 학설에 대한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면 기존 학설이 무력화 된다는 건데, 그 근거가 명확히 언급되지도 않고 그 근거에 대한 평가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핑켈스타인은 <발굴된 성서>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성서가 만들어진 세계는 위대한 도시들과 성스러운 영웅들의 신화적 영역이 아니라, 백성들이 전쟁·가난·불의·질병·기근·가뭄 등 모든 인간의 공포에 맞서 그들의 미래를 위해 고투하던 작고 세속적인 왕국이었다.” 그는 기원전 7세기 남유다 왕국 말기 요시야 왕 때 정치 프로파간다(선전) 작업으로 성서가 쓰였다고 주장했다. 당시 아시리아에 이은 바빌로니아제국의 위협 앞에 북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는 등 남유다는 바람 앞 촛불 같은 운명이었다. 야훼 일신교를 중심으로 개혁과 왕권을 강화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확립하는 차원에서 성서가 만들어졌다고 분석한다. 야훼가 선택한 민족 이스라엘에 약속한 통일왕국과 영화를 다윗과 솔로몬이 이뤄냈고, 이들의 후손인 남유다 왕가가 이스라엘 정통성을 가졌다는 걸 보여줄 목적이었다. 국력에서 북이스라엘 왕국보다 훨씬 뒤처졌으나 간신히 살아남은 남유다가 북이스라엘 유민과 그 영역을 통합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기사를 통해 핑켈스타인의 주장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어느 새 상대방의 주장을 인용하던 기자는 작가의 의견을 옮기는 건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지 애매모호한 문장으로 위 문단을 마친 후 아래와 같이 기자의 입장을 마무리 짓습니다.
성서가 언제 어떻게 왜 만들어졌는지는 유대인과 유대교, 이스라엘을 둘러싼 신화와 오해를 푸는 시작점이 될 수밖에 없다.
요세프 가핑켈 교수의 강의 요약에서 히르벳 케야파에서 명문(inscription) 발견을 통해 다윗에 대한 서사가 기원전 10세기가 아니라는 주장이 반박되었다고 했던 거 기억하시나요? 이 분도 저와 마찬가지로 오해를 풀고자 하니 동지의식이 생길까 말까 하네요…
바쁜 선임기자님께서 추가조사를 할 겨를이 없다는 건 익히 알고 있습니다. 드라마 <허쉬>에서 묘사된 것과 같이 그 업계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죠.
앗, 그런데 기자님의 본 기사는 기획시리즈 <유대인 이스라엘, 그 발명된 신화들>의 일부분이네요.
이 분 역시 목적을 가지고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해 예단에 끼워맞춘 건 아닐까요?
Christianity Daily의 기사
기독일보라는 종교적인 타이틀을 지닌 신문의 기사를 봅시다. (원문링크)
기자는 일단 도입부에 히르벳 케야파의 발굴에 대한 의미를 소개하고 이어서 다음 문단에 학계의 스펙트럼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예루살렘 서쪽 쉐펠라 (수 15:33절에는 평지로 기록)의 엘라 골짜기에 위치한 히르벳 케야파(Khirbet Qeiyafa)를 탐방하기로 했다. Khirbet Qeiyafa는 이번 개인적인 성경 현장 연구에서 가장 기대해 온 곳이다. Khirbet Qeiyafa 를 찾아갈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이스라엘의 성경 학자들 간에 오랫동안 논쟁되어 온 고대 이스라엘 국가 출범 시기에 대한 논란이 히르벳 케야파의 발굴을 통하여 마무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고고학적인 배경을 연구하는 학자들 간에는, 고대 이스라엘 국가의 출범과 정치적 상황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고대 이스라엘 국가 출범 시기에 대해 큰 이견을 갖는 학자들을 Maximalist, Minimalist, Ultra Minimalist로 구분한다.
①Maximalist에 속한 학자들은 Benjamin Mazar, Y. Aharoni, Stager를 포함한 다수의 학자들로, 이들은 성경에 기록된 출애굽 사건은 사실이며, 다윗과 솔로몬은 실존 인물일 뿐만 아니라 이미 주전 1000년에 이스라엘은 통일 왕국을 이루었으며 예루살렘을 수도로 중앙 통치가 이루어졌던 시대라고 주장한다.
②이에 반하여 Minimalist에 속한 학자들은 히브리 민족의 출애굽 사건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다윗과 솔로몬 역시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을 다스렸던 왕이 아니라 작은 마을의 통치자에 불과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속한 고고학자들은 Israel Finkelstein이 가장 대표적이며 그 외에 Herzog, Singer-Avitz이 있다. 이들은 고대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출범 시기를 주전 1000년이 아니라 주전 920년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다윗과 솔로몬에 대한 성경의 많은 이야기들은 허구라고 주장한다.
③더 나아가 Sharon 같은 학자는 고대 이스라엘 국가의 출범 시기를 더욱 축소하여 주전 900년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발굴에 대해 소개하며 세부 내용을 소개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강의를 통해 확인한 내용들이네요)
(생략) ....이들의 도움을 얻어 2007년과 2008년 Yosef Garfinkel과 Saar Ganor는 히브리 대학 고고학과의 도움으로 6주간 히르벳 케야파를 발굴하였다. 이 두 번의 발굴로 Khirbet Qeiyafa의 서쪽 약 600m2이 발굴되었다. 이때에 네 개의 방이 있는 성문 (four chambered gate), 성문에 집이 있는 성벽 구조 (casemate wall), 그리고 성문에서 히브리어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오스트라카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2008년 11월 Khirbet Qeiyafa의 동쪽을 발굴하여 이곳에서 거대한 바위를 사용하여 건축된 두 번째 성문을 발견하였다. 각각의 문에 사용된 바위의 무게는 약 10톤에 이른다. 유다와 이스라엘 시대를 통틀어 두 개의 성문을 갖고 있는 도시로는 Khirbet Qeiyafa가 유일하다. 참고로, 여호수아 15:36절과 사무엘상 17:52절에 보면, 샤아라임(Shaaraim) 지명을 찾을 수 있다. 히브리어로 샤아라임이란 두 개의 성문 (two gates)를 가리킨다. 그동안 여호수아 15장과 사무엘상 17장에 기록된 샤아라임의 위치는 확인되지 않은 채 학자들간의 근거 없는 주장만 있었다. 그러나 이번 Khirbet Qeiyafa의 발굴로 더 이상 샤아라임의 위치에 대한 이견도 없게 되었다.
그리고 발굴 결과에 대한 설명과 그게 뭘 의미하는 지도 상세하게 설명해줍니다.
(생략) ... Khirbet Qeiyafa에서 발견된 두 개의 성문은 매우 독특한 것이다. 히르벳 케야파 보다 3배 또는 4배 더 큰 도시인 라기스(Lachish), 므깃도 역시 한 개의 성문만 있을 뿐이다. Khirbet Qeiyafa에서 발견된 성벽의 전체 길이는 약 700미터에 이르며, 성벽의 폭은 4미터에 이르며, 성벽은 방이 있는 성벽 구조 (casemate wall)로 되어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런 규모의 요새화된 성벽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약 20만톤의 바위가 필요했을 것으로 계산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규모의 요새는 지방의 작은 통치자가 소수의 주민을 이끌고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Khirbet Qeiyafa의 견고한 요새는 절대적 권력과 중앙 집권이 이루어진 국가에 의해 건설된 요새란 것이 많은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생략)
그리고 연대기에 대한 근거를 설명하고, 저와 같이 일반 독자들이 잘 모를 성경에서 말하는 역사 시간대를 설명해줍니다.
Khirbet Qeiyafa의 발굴 유적지 연대는 주전 10세기 초에 속한다. 이런 연대 해석은 지층 분석, 토기 분석, 그리고 이곳의 네 개 구덩이에서 발견된 올리브 나무의 흔적에 대한 탄소 연대 측정에 따른 결론이다. 그 시기는 주전 1000-975년 또는 1000-969년에 이른다. 이때는 성경에서 다윗 왕이 통치하던 시대와 정확히 일치한다. 다윗 왕은 주전 1000-965년에 이스라엘을 통치하였으며, 솔로몬은 주전 965-930년 통일 이스라엘 국가를 다스렸다. 그리고 Khirbet Qeiyafa는 약 20년간 존재했을 뿐이다.
주전 11세기 말과 10세기 초, 엘라 골짜기의 정치적인 상황은 이스라엘과 블레셋 간의 갈등이 심하던 때였다. 블레셋의 큰 도성인 가드는 Khirbet Qeiyafa로부터 서쪽 약 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성의 규모 또한 약 30헥타아르에 이르렀다. 가드는 골리앗의 고향으로, 이스라엘에 지속적으로 위협이 되었던 도성으로 다윗은 가드에 필적할 만한 방어 요새가 필요했을 것이고, 이에 엘라 골짜기에 Khirbet Qeiyafa를 건설했을 것이다. 성경에서 엘라 골짜기에 요새를 건설한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왕은 주전 10세기 초, 다윗 왕이 유일하다. 또한 Khirbet Qeiyafa의 서쪽 성문에서 발견된 히브리어로 기록된 토기 파편은 이미 이곳에 글이 통용되었고, 십계명의 유사한 교육이 이루어졌음도 알 수 있다.
확연히 다른 스타일의 기사입니다. 기사 작성자가 누군지 알아보니 예루살렘대학과 히브리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 이주섭 목사라고 하네요.
(하아..이 분 기사를 먼저 발견했으면 조사 작업이 엄청 단축될 뻔 했네요. 아니면 시리즈 기획을 기사 하나로 대체하거나요.)
성서고고학계에서는 이 책을 어떻게 평가하는 지, 전문가 집단인만큼 좀 더 근거에 기초한 비평을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성서고고학회의 이스라엘 핑켈스타인의 책 리뷰
성서고고학회(Biblical Archaeology Society)에서 이 책에 대한 두 사람의 비평을 하나의 기사로 엮어 개제합니다. ※BAR (Biblical Archaelogy Review) 2014년 8월호에 개제된 내용 (링크)
성서고고학회는 이렇게 글을 시작합니다.
"미국의 뛰어난 고고학자 William G. Dever가 이 책에 대한 리뷰를 했습니다. 핑켈스타인도 이스라엘의 뛰어난 고고학자 중 하나죠. 하지만 전 여기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학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또 다른 유명한 고고학자인 Aaron Burke에게 두번째 리뷰를 부탁했습니다. 그에게 첫번째 리뷰를 누가했는지, 또 결론이 어땠는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두 리뷰를 아래에 개제합니다"
1) 윌리엄 G. 데버의 리뷰 (한영대역)
(제목) 이스라엘(국가)에 대해 더 알게 되는 건가? 아니면 (작가) 이스라엘에 대해서인가?
이스라엘 핑켈스타인의 최신작, <The Forgotten Kingdom>을 간략하게 요약 리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수많은 오류(error)와 와전(misrepresentation)와 과도한 단순화(over-simplification)와 모순들을 다루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오류들을 다 알고 있다. 핑켈스타인의 주요 관점들은 이미 다른 곳에서 개제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부주의한 (경계를 게을리하는) BAR (성서고고학 리뷰) 독자들에게 이 책이 제대로된 역사학을 담고 있지 않고, 드라마(theater)라는 것을 경고해주는 것 뿐이다. 핑켈스타인은 마술사이다. 마술의 교묘한 손놀림으로 "잃어버린 왕국'을 만들어내며 독자들에게 의도적 착각이 사실이라고 설득하고, 마술사가 얼마나 똑똑한지 감탄하며 떠나길 기대한다. 핑켈스타인은 한 때 새로운 방법론을 연구하던 혁신적인 학자였지만, 지금은 그저 쇼맨(showman)이 되어버렸다. 재능과 에너지와 매력의 낭비이며 우리 학과에 대한 손상이다.
It is impossible to summarize Israel Finkelstein’s latest book,The Forgotten Kingdom, in a brief review because its numerous errors, misrepresentations, over-simplifications and contradictions make it too unwieldy. Specialists will know these flaws, since all of Finkelstein’s pivotal views have been published elsewhere. Here I can only alert unwaryBARreaders that this book is not really about sound historical scholarship: It is all about theater. Finkelstein is a magician, conjuring a “lost kingdom” by sleight-of-hand, intending to convince readers that the illusion is real and expecting that they will go away marveling at how clever the magician is. Finkelstein was once an innovative scholar, pioneering new methods; now he has become a showman. A tragic waste of talent, energy and charm—and a detriment to our discipline.
This book is such a good read, so drama-filled, so clever that it took me—a specialist—a bit of time to see through it. For example, Finkelstein reconstructs an early Israelite “sanctuary” at Shiloh (where he excavated) to give it the necessary prominence in Israel’s formative period (pp. 23–27; 49, 50). He makes three arguments: (1) Although he now admits that he found no archaeological evidence (as he claimed in his original excavation report on Shiloh), the Bible’s “cultural memory” nevertheless requires that there must have been such a cult-place there. (2) In Iron I (1200–1000 B.C.E.—Israel’s formative period) there “was not a single house” at Shiloh, only public buildings. (3) Shiloh was later destroyed, just as implied in the Hebrew Bible.
What are the facts?
All of Finkelstein’s evidence of a “cult-place” at Shiloh is circumstantial; he himself admits this.
He interprets the well-known Iron I pillar-courtyard House A at Shiloh that was originally excavated by a Danish expedition and later reinvestigated by himself as a public building only because it contains “too many” storejars (as many as 20). Yet his own Iron I house excavated at Megiddo (o/K/10)—published explicitly as an “ordinary private house”—contained more than 40 large storejars. And he can presume the absence of other private houses at Shiloh only because few other areas have been excavated, and where they have been excavated other houses are known.
As for reliance on the Hebrew Bible’s “cultural memory” (the latest fad in Biblical studies), Finkelstein has famously rejected this “cultural memory” as unreliable. And he has castigated other archaeologists for invoking it! Yet here (and elsewhere) he does not hesitate to appeal to Biblical tradition when it suits his purposes. As for evidence of Shiloh’s destruction c. 1050 B.C.E. at the hands of the Philistines, Finkelstein cites not archaeological evidence, but only Jeremiah 7:12–14; 26:6–9, which he admits refers rather to Shiloh’s destruction by the Assyrians in the late eighth century B.C.E. (impossible even then, since the site was deserted). He himself is driven to fall back on the Bible’s “cultural memory.”
In sum, Finkelstein’s “early cult center at Shiloh” is a fantasy, a product of his imagination.
Fundamental to Finkelstein’s entire reconstruction of the history of the northern kingdom of Israel is a “Saulide polity,” from its center at Gibeon all the way up to the Jezreel Valley (pp. 37–43, 52–61).
다시 말하자면, 사실는 무엇인가?
(1) 기브온(Gibeo / Tell el-Jib)에서 제임스 프리차드(James Pritchard)의 발굴을 통한 층위학과 연대기는 악명 높을 정도로 틀렸다. 얼마나 틀렸냐면 초기 철기시대 것이라는 거의 없다시피한 증거는 한 세기 미만의 범위 내에서 연대를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이다. 역사적 복원/재구성에는 사용될 수 없다. (심지어 발굴보고서에 지층 번호도 없다.)
Again, what are the facts? (1) The stratigraphy and chronology of James Pritchard’s excavations at Gibeon (Tell el-Jib) are notoriously flawed, so much so that the scant evidence for the Iron I period cannot be dated within a margin of less than a century; it cannot be used for any historical reconstruction (there are not even any stratum numbers in the excavation reports).
Finkelstein’s only evidence for an administrative center at Gibeon is the supposed plan of a casemate wall (Fig. 11:2, drawn up by a student). Yet even a casual glance reveals nothing but a short stretch of a broken single wall abutted by two ephemeral wall fragments.
With regard to the claim that Saul ruled from a sort of capital at Gibeon, the only Biblical references are to his having visited there once, and being remembered in David’s day as having slaughtered its inhabitants, who were not even Israelites (cf. 2 Samuel 21:1ff.).1
Finkelstein has simply invented out of whole cloth a “Saulide polity at Gibeon.”
이 책의 진정한 요점은 성경의 기원전 10세기의 다윗과 솔로몬의 “연합군주국”이 남부 유다인 편향의 성서 작가들이 나중에 작성한 허구 소설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이다. 핑켈스타인에 따르면 진정한 “이스라엘 국가”는 이스라엘 북쪽 왕국이고 기원전 9세기 오므리(Omrides) 시대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그가 주장했듯이).
The real point of this book is to argue that the Biblical “United Monarchy” ofDavidandSolomonin the tenth century B.C.E. is a later fiction, concocted by the southern, Judahite-biased Biblical writers. The real “Israelite state,” according to Finkelstein, is the northern kingdom of Israel, and even this arose only in the ninth century B.C.E., that is, in the days of the Omrides (as Finkelstein has claimed for some 20 years).
Just look at what Finkelstein’s “Saulide polity” would actually imply, using his own assumptions and assertions: (1) Saul was a Judahite, a southerner of the tribe of Benjamin. (2) Gibeon was a southern site, only 6 miles from Jerusalem. (3) Saul is rightly regarded as a historical figure, a king, dated correctly to the early tenth century B.C.E. at latest. (4) Saul’s effective rule extended through Samaria (!) up to the Jezreel Valley in the north. Thus there was a tenth-century kingdom that embraced both Judah and Samaria, ruled from a Judahite capital. In other words, Finkelstein’s “Saulide polity” is in fact much the same as the Bible’s “United Monarchy”—established even before the time of David and Solomon. The irony is that this time Finkelstein has been so clever that he has outwitted himself. With his imagined “Saulide polity,” his oft-repeated claim that the northern kingdom of Israel is a late development, independent from Judah, unrecognized until he discovered it, falls apart. So does this book.
The other pillar on which Finkelstein’s rediscovered northern kingdom rests is his vaunted “low chronology,” in which he down-dates the previously accepted dates for the origins of Israel by as much as a hundred years. Yet this, too, is regarded by most mainstream archaeologists as without substantial foundations. First suggested some 20 years ago, Finkelstein has tirelessly championed his “low chronology” ever since. Here he presents it without so much as a single reference to its numerous critiques, some of them devastating (as Kletter 2004; Ben Tor and Ben Ami 1998; Dever 1997; Mazar 2007; Stager 2003; and others).2In numerous publications over 20 years, Finkelstein has relentlessly reworked the stratigraphy and chronology of site after site, not only in Israel and the West Bank, but even in Jordan, in order to defend his “low chronology.”
In fact, there has never been any unequivocal empirical evidence in support of the “low chronology.” Only some carbon-14 dates offer any evidence at all, and many other dates support the conventional chronology (as at Tel Rehov, which Finkelstein never cites here). At best, the low chronology is a possibility for a 40-year, not a 100-year, adjustment. Even this is not probable, and it is certainly not proven.
Yet on this flimsy foundation Finkelstein rests his entire elaborate reconstruction, with far-reaching implications for southern Levantine and Israelite history. Set that scheme aside, and Finkelstein’s claim to have discovered a “lost kingdom” disappears in smoke—a book without any rationale.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핑켈스타인은 점진적으로 자신의 극단적인 “저연대기”설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고 있다고 인정하는 일 없이) 그리고 그의 독자들이 팩트체크를 하지 않을 거라는 가능성에 기대를 건다. 그 조차도 지금은 기원전 10세기 유다 국가가 존재했고 북쪽까지 통치했을 수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는 기원전 8세기전 어떤 유다 국가의 존재도 부정한 공개적 이력이 있기 때문에 다윗과 솔로몬은 진정 기원전 10세기 왕이었다는 걸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막다른 골목을 빙돌아 그들의 선조인 사울왕으로 이목을 끌려할 뿐이다.
What’s going on here? It took me a while to figure it out. What Finkelstein is doing is gradually distancing himself from the extremes of his low chronology—without ever admitting he is doing so—and counting on the likelihood that readers will not check his “facts.” Even he now realizes that a Judahite state did exist in the tenth century B.C.E. and that it could have extended its rule to the north. He cannot bring himself to admit that David and Solomon were real tenth-century kings since he is on record as denying the existence of any Judahite state before the eighth century B.C.E. (or lately, the ninth century). So he does an end run around the impasse by distracting attention to their predecessor Saul as king!
Ever since the discoveries at Khirbet Qeiyafa a decade ago, where Judahite state-formation is clear by the early tenth centurya(and Finkelstein accepts this early date), his “low chronology” has been progressively undermined. It should be abandoned.3
이 책에서 핑켈스타인은 잃어버린 왕국을 발굴한 게 아니라, 발명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밀한 독자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통찰을 얻을 것이다ㅡ(국가가 아닌)이스라엘(핑켈스타인)이란 작가에 대해서 말이다.
In this book Finkelstein has not “discovered a lost kingdom”; he has invented it. The careful reader will nevertheless gain some insights into Israel—Israel Finkelstein, that is.
다음은 두번째 리뷰입니다.
2. Minimizing David, Maximizing Labayu
다윗을 최소화시키고, 라바유를 최대화 시키다
Review by Aaron Burke
이스라엘 핑켈스타인의 <잃어버린 왕국 (The Forgotten Kingdom)>은 가장 최신의 Textual(성서비평학), 고고학적 접근을 받아드리게 하고자 우리에게 고고학과 북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역사를 다시 생각해보도록 초대한다. 이건 시도하는 사람이 없다시피한 (혹은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인 )야심찬 작업입니다. 이런 노력은 칭찬할 만합니다. 이 책은 처음으로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해 고고학적 또 성서 텍스트 비평학의 합성물을 제공하려는 시도 입니다.
Israel Finkelstein’s <The Forgotten Kingdom> invites us to [reconsider the archaeology and history of the northern kingdom of Israel] in an effort to [integrate the most recent textual and archaeological approaches]. It is an ambitious work that few would attempt—or be capable of. Such an effort is commendable; this might be the first book-length treatment to try to give us an archaeological and Biblical text-critical synthesis of ancient Israel’s history.
지금은 "20살"이 넘은 고대이스라엘에 대한 이전 고고학적 작업은 대부분 성경 중 인정된 철기시대의 역사적 내러티브를 고쳐쓰거나 재구성하지 않고 거기에 (그 타임라인에) 맞춰 고고학적 발견을 분류해왔다. 핑켈스타인이 도입부에서 설명하듯이, 핑켈스타인은 고고학을 사용하여 성서 기록에서 유다에게 정체성의 많은 부분을 잃은 북 이스라엘의 역사적 발전에 대한 '감'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핑켈스타인은 더 데이터의 더 광범위한 지리적 영역의 데이터를 끌어올 뿐만 아니라 더 긴 역사적 관점을 취합니다. 그는 "개인적 관점"이라고 강조하며 자신의 개인적 성취 (연구 결과| 자신의 발굴 및 조사 뿐만 아니라 그의 최근의 "정확한 과학" 계획을 포함)에 크게 의존합니다.
Prior works on the archaeology of ancient Israel, which are now more than 20 years old, largely sought to catalog archaeological finds without rewriting or recasting the accepted historical narrative of the Bible for the Iron Age. Such approaches are unsatisfying for a lack of rigorous engagement with a wide range of methodologies common in Biblical studies. As he explains in the introduction, Finkelstein instead seeks to use archaeology to provide a sense of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the northern kingdom of Israel (the “forgotten” kingdom of his title), which lost much of its identity to Judah in the Biblical account. To do this, Finkelstein musters not only a wide geographical scope of data, but he also takes a longer historical perspective. He draws heavily on his own personal accomplishments, which are highlighted as “the personal perspective”—not only his excavations and surveys but more recently his “Exact Sciences” research initiative.
서두에서 핑켈스타인은 북부 고지대의 권력 배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것은 핑켈스타인의 전체 전제, 즉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독립적 성격의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그 밑에 깔려있는 근본적인 목표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성서 이야기에 묘사된 바와 같이 북부 왕국과 이스라엘 연합 군주국의 관계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와 무관한 북부 고지대의 철기 시대 정치 조직에 대한 진화적 궤적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핑켈스타인은 남부 유다 왕국이 출현하기 훨씬 이전에 철기 시대 이스라엘 왕국으로 발전한 정치 및 사회경제적 발전의 긴 역사적 궤적을 밝히기 위한 후기 청동기 시대의 소위 "세겜 정치조직"(Schechem Policy)를 재구성합니다.
At the outset Finkelstein describes what we might call the background of power in the northern highlands. This is an important starting point for Finkelstein’s entire premise, namely the independent character of the northern kingdom of Israel. The underlying goal is to articulate an evolutionary trajectory for Iron Age political organization in the northern highlands that is independent of the traditional understanding of the northern kingdom’s relationship to a United Monarchy of Israel, as depicted in the Biblical narrative, which is centered instead on Jerusalem. Finkelstein reconstructs a so-called Shechem polity during the Late Bronze Age, which is intended to reveal a long historical trajectory of political and socio-economic developments that evolves into the Iron Age kingdom of Israel, long before the appearance of the southern kingdom of Judah.
기원전 14세기, 이집트가 가나안을 다스리던 시절의 아마르나 편지 (Amarna Letters)*는 핑켈스타인의 논고에 아주 중심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핑켈스타인이 인지하듯이 아마르나 서신에서 "세겜 땅"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그걸 북방 고지대의 중앙 체계가 있는 강력한 정치조직으로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집트 통치에 반란을 일으킨 라바유(Labayu) 혹은 그의 아들들은 한 번도 세겜과 그 영토자의 통치자로 밝혀진 바 없다.
The Egyptian 14th-entury B.C.E. Amarna letters, from a time when Egypt controlled Canaan, play a central role in Finkelstein’s discussion. The problem, however, as Finkelstein recognizes, is that although “the land of Shechem” appears prominently in the Amarna correspondence, it is impossible to identify it with any certainty as the central and strongest polity in the northern highlands, particularly since neither Labayu, the leader of an insurgency against Egyptian rule, nor his sons is ever identified as ruler of Shechem and its territory.
※ 아마르나 편지 ( THE AMARNA LETTERS) :
이집트의 엘 아마르나에서 발견된 300개 이상의 후기 청동기 시대 설형 문자 서판 모음집인 아마르나 편지에는 14세기 중반의 파라오인 아메노피스 3세와 그의 아들 아케나텐이 여러 가나안 도시의 지역 통치자들과 왕실에서 주고받은 서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상태. 편지에는 “세겜 땅”과 이집트에 대한 반란을 주도한 라바유라는 인물이 자주 언급됩니다. 이스라엘 핀켈스타인은 라바유가 남쪽 유다 왕국이 존재하기 훨씬 이전에 북부 고지대의 강력한 정치체였던 세겜과 그 영토를 통치했다고 믿습니다. 평론가 아론 버크는 아마르나의 편지에서 결코 라바유가 세겜의 통치자임을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Finkelstein 주장의 이 “중심 교리”는 무너집니다.
THE AMARNA LETTERS, a collection of more than 300 Late Bronze Age cuneiform tablets discovered at el-Amarna in Egypt, record the royal correspondence of mid-14th-century pharaohs Amenophis III and his son, Akhenaten, with local rulers of various Canaanite city-states. The letters frequently mention “the land of Shechem” and a character named Labayu, who led an insurgency against Egypt. Israel Finkelstein believes that Labayu ruled Shechem and its territory, which was a powerful polity of the northern highlands long before the southern kingdom of Judah existed. Reviewer Aaron Burke points out that the Amarna letters never explicitly identify Labayu as the ruler of Shechem. Thus this “central tenet” of Finkelstein’s argument collapses.
결과적으로, 북부 고지대에서 정치의 탁월함을 지지하는 핀켈슈타인의 주장의 이 중심 교리(및 그에 따른 핀켈슈타인의 모든 추측)는 그가 추론한 증거에 부합하지 않다. 실제로 여기에서 핑켈슈타인의 라바유(Labayu) 전통은 철기 시대 북부 이스라엘 왕국의 기원을 뒷받침하는 대리인 역할만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핑켈스타인은 단순히 라바유(Labayu)를 사용하여 이스라엘(및 유다)의 기원으로서 10세기에 통합 군주국의 역할을 대체했다. 이 재구성은 전적으로 그럴듯하지만 성경의 다윗 전통이 제공하는 설명 체계(설명력)을 대체하지 않는다. 팩트는 핑켈스타인(Finkelstein) 자신의 리뷰가 명백히 밝히듯이 초기 철기시대 IIA의 북부 고지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Consequently, this central tenet of Finkelstein’s argument in support of the prominence of a polity in the northern highlands (and all of Finkelstein’s speculation therefrom) does not follow from the evidence he adduces. Indeed, it seems that Finkelstein’s Labayu tradition here serves only as a surrogate to support the origin of the Iron Age northern kingdom of Israel. Finkelstein simply uses Labayu to replace the role of the United Monarchy in the tenth century as the origin of Israel (and Judah). This reconstruction, while entirely plausible, does not replace the explanatory framework provided by the Davidic tradition in the Bible. The fact is that we know next to nothing about the northern highlands in the early Iron IIA, as Finkelstein’s own review makes plain.
이 초기 기간의 텍스트 기록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따라서 Finkelstein이 여기서 시도하는 재건에는 고고학적 증거와 더 넓은 지역적 관점이 필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증거 없이) 이에 대한 그의 조치는 전적으로 Textual 하게(원문비판학/원문비평학/성서비평학) 남아있다. 예를 들어 이하의 내용에 대해 (별다른 비평없이) 지나가듯 언급만 하고 있다: 철기 시대이전 유다 사람의 세겜, 예루살렘, 헤브론에 정착; 정착촌에 대해. 각 정착촌은 고고학 기록에 나타난 바와 같이 실로와 비슷한 발전 궤적을 경험했다. 핑켈스타인은 결코 청동기 시대 정치조직(단체)로 확인된 바 없고 성서 전통에서 따르면 더 나중에 컬트 중심지로서만 중요했던 실로(샤일로/Shiloh)에 대해서만 실질적인 논의를 한다.
The textual record for this early period is very limited; therefore, archaeological evidence and a wider regional perspective are essential to the reconstruction Finkelstein is attempting here. Nevertheless, his treatment remains entirely textual. Only passing references are made, for example, to pre-Iron Age settlements at Judahite Shechem, Jerusalem and Hebron, each of which experienced comparable, developmental trajectories as Shiloh, as revealed in their archaeological records. Only Shiloh, which is never identified as a Bronze Age polity and is important only as a cult center in later Biblical tradition, receives any substantive discussion by Finkelstein.
철기시대 1부터는 핑켈스타인의 토론은 전적으로 그의 유명한 "저연대기(Low Chronology) "를 (받아들일 때만 말이 되는)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게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 지 모르는 이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만약 고고학적 현상(사건)의 시간대를 이동시키려면(변경하려면) 그 현상과 관련이 있는 다양한 집합의 사건들을 식별해야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날짜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핑켈스타인의 이어지는 분석의 뉘앙스 대부분을 받아들일 근거가 거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연대기는 아미하이 마자르 (Amihai Mazar), 브롱크 램지(Christopher Bronk Ramsey/옥스포드 대학교 물리학자,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전문가) 및 레호브(Rehov), 히르벳 엔 나하스(Khirbet en-Nahas) 및 텔 도르(Tel Dor)와 같은 발굴지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토론한 결과에 대해 매우 제한적으로만 인정하며, 자신의 발굴지인 메기도(Megiddo)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건 굉장히 이상한 일인데 왜냐하면 이 책의 틀(framework)는 (그가 주장하는) 저연대기(low Chronology)를 실현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핑켈스타인의 포지션은 실제로 책 안에서 (그의 저연대기설에 위배되는)데이터를 마주하며 '구불구불하게' (일관성 없이) 유지된다.
From the Iron Age I onward, Finkelstein’s discussion centers largely on an acceptance of the lowest version of his famous “low chronology.” For those who may not recognize immediately what is at stake here, to put it simply, if one shifts the dates of archaeological phenomena later in time, one will be required to identify different sets of events to which these phenomena correlate. Consequently, if one cannot accept these dates, there is little basis to accept most of the nuances of Finkelstein’s ensuing analysis. Unfortunately, his chronology continues to rest exclusively on Megiddo, his own site, with very limited acknowledgment of the results of his discussion with Amihai Mazar, Bronk Ramsey and others from sites such as Rehov, Khirbet en-Nahas and Tel Dor. This is strange since the book’s framework otherwise concedes a less-than-fully-realized “low chronology.” Indeed, Finkelstein’s positions in this book are sometimes tortuously maintained in the face of contravening data.
나는 핑켈스타인의 지속적인 '북 이스라엘 왕국의 발전에 역사적 다윗과 통일군주국이 미친 영향에 대해 최소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그 왕국이 얼마나 짧았건) . 핑켈스타인이 기원전 9세기 북부 고지대에서 그런 과정이 있었다는 증거가 없음에도 북이스라엘 왕국을 끼워넣을 '빈 틈'을 만들어야 한다. 핑켈스타인은 북부 고지대에서 정치적 권력의 토착 기원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핵심 주장은 실패합니다.
I conclude by turning to Finkelstein’s persistent minimizing of the role played in the northern kingdom’s development by a historical David and a United Monarchy, however short-lived it may have been. Finkelstein must do this, however, to create a lacuna that can then be filled by the northern kingdom of Israel, despite the absence of evidence for any such process occurring in the northern highlands until the ninth century B.C.E. Since Finkelstein is unable to demonstrate an unequivocal basis for the indigenous origins of political power in the northern highlands, his central argument fails.
만약 성경이 제시하는 것보다 다윗의 업적에 대해 더 제한적인 견해를 취하더라도 그는 여전히(유다) 기초적인 인물로 남는다. 텍스트와 고고학 모두에서 핑켈스타인의 분석은 이미 성경 외의 비문 데이터, 즉 텔단 비문에 의해 확증된 성경의 창립 인물(David)과 조화될 수 없습니다. 이 비문은 다윗의 존재뿐 아니라 그가 세운 왕조도 증거합니다.
Even if one adopts a more limited view of David’s accomplishments than the Bible gives him, he remains a foundational figure of the United Kingdom.Finkelstein’s analysis, both textual and archaeological, cannot be reconciled with a founding Biblical figure (David), whose existence is already corroborated by extra-Biblical inscriptional data, that is, the Tel Dan inscription.bThis inscription evidences not only David’s existence but also the dynasty he established.
물론 이전 학자들의 기대와 달리 다윗의 세습 왕국에 대한 명확한 지문은 찾기 어려울 수 있지만, 핑켈스타인이 주장하는 북부 고지대의 정치적 정당성 유산을 설명하기 부족한 것과 뭐가 다른가? 핑켈슈타인은 자신이 재구성하는 초기 철기시대(IIA)의 북부고지의 정치적 정당성을 위해서는 이를 허용하지만, 남부 고지대(유다왕국)에는 그렇게 하기를 꺼립니다. 이것이 그의 작품의 가장 큰 약점이다.
Concededly, a clear fingerprint of David’s patrimonial kingdom may be elusive, contrary to earlier scholarly expectations, but how is this any less the case for what is lacking in the north to illustrate the legacy of political legitimacy in the northern highlands, as Finkelstein asserts? Finkelstein makes allowances in his reconstruction of an early Iron IIA polity in the north, but he is unwilling to do that for the southern highlands. This is a major weakness of his work.
Finkelstein의 경력 중 가장 큰 업적은 전통적인 성서 고고학에 대한 자연 과학(Hard Scicence)의 가치를 입증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는 성서에 대한 전통적인 텍스트 비평 연구의 늪으로 깊숙이 들어가지만 단지 그 결과가 얼마나 불만족스러울 수 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이 책은 입증할 수 없는 연대기와 성서 역사에 대한 일련의 가정에 의존하는 추측적인 재구성으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그의 책에는 명확한 방법론이 부족하다. 성경 본문 연구(성서비평학)를 고고학과 통합하려는 그의 노력은 그러한 시도가 얼마나 어렵고 근본적으로 그 결과가 얼마나 불확실한지를 보여줄 뿐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우리가 성경 시대의 역사적 재구성을 시도할 때 가정과 허용치를 적용하는 데 보다 공평한 접근을 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Although Finkelstein’s greatest career achievement may be the demonstration of the value of hard sciences to traditional Biblical archaeology,in this book he wades deep into the morass of traditional text-critical studies of the Bible only to demonstrate how unsatisfying the results can be. The book is replete with speculative reconstructions that depend on a series of assumptions about chronology and Biblical history that cannot be substantiated. Thus his book lacks an articulated methodology.His effort here to integrate Biblical text-studies with archaeology only reveals both how difficult such an enterprise is and fundamentally how uncertain the results will be. Most of all, it reminds us that we must take a more evenhanded approach to the application of the assumptions and the allowances we make when attempting historical reconstructions of the Biblical periods.
이렇게 두 성서고고학자의 리뷰가 끝납니다.
초자연적인 것을 배제하더라고 역사 기록으로서 성서적 전통(Biblical Tradition)을 최대한 받아들이는 맥시멀리스트 (Maximalist). 성서의 역사성을 최소한으로 받아드리는 미니멀리스트(Minimalist). 그리고 미니멀리스트의 대표 작가 이스라엘 핑켈스타인(Israel Finkelstein)의 저연대기설(Low Chronology* ※ 학자들이 '설说'을 붙여주지 않는 어른들의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맥시멀리스트와 미니멀리스트의 의견과는 조금 달리 이미 발견된 것들에 대해서만 확신하고 검증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선 기다려봐야된다는 요세프 가핑클의 주장.
학계 내 두 상반된 의견의 흐름 요약
1980년 대 이전 맥시멀리스트의 주장:
성경의 역사적 기록은 다른 고대사를 바라보는 것과 동일한 시선으로 바라볼 가치가 있음.
근거: 다른 역사기록에 언급되지 않았던 성경에 나온 국가와 지역에 대한 기록이 탐사를 통해 발굴됨.
(니느웨, 앗시리아 등등)
이 시절 미니멀리즘 학파의 주장:
성경에 기록된 역사는 모두 신화이자 허구이다. 훨씬 이 후의 후손들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 낸 것이다.
흐름을 뒤집은 발견:
- 고고학적 근거: 텔 단 비문 (Tel Dan Inscription) - 아람왕이 이스라엘의 왕들을 죽인 것에 대한 기록이 있음.
이 후 미니멀리즘 학파의 수정된 의견:
저연대기 (Low Chronology) 설- 성경에 기록된 다윗시절의 유다 왕국은 기원전 10세기가 아니라 그 이후인 기원전 7세기 일 것이다. (대표주자: 이스라엘 핑켈스타인)
고고학적 근거:
실로(Shiloh/샤일로) 기존 발굴자료 (1922, Danish Expedition)에 대한 재해석.
재해석의 주요 근거:
(1) 기존에 개인의 집(Private House)으로 해석된 곳의 뜰(courtyard)에서 StoreJar(보관용 토기)의 수량은 20개로 너무 많기 때문에 공적건물(Public building)이 아닐 것. <- 하지만 메기도 발굴 시엔 40개 이상의 보관용 토기가 발견된 것은 보편적인 개인의 집(Private House)
* 문제점: 유다왕국의 발생의 연대기만 100년 이동할 경우, 다른 사건들과 일치성이 무너짐.
※이 해석에 영향을 미친 주장: 성경은 이스라엘 후대가 정치적 정당성을 위해 다윗 시대 한참 이후에 기록했을 거라는 가능성(의혹) 제기.
* 이 주장에 대한 근거: 없음. 포스트모더니즘적 텍스트 비평. 시선의 전환.
(2) 다른 가능성 제시: 남부 유다왕국 출현 전, 기원전 14세기의 '세겜 정치조직 (Schechem Polity)' 이 이스라엘 왕국의 기원이었을 것. 이집트의 가나안 지역 통치시절 반란 주모자인 라마유 (Lamayu)가 그 세겜 정치조직의 리더였을 것.
* 근거: 아마르나 편지에 언급된 라마유.
* 문제점: 라마유가 세겜의 통치자였다는 근거가 없음. 시대배경 역시 초기 철기시대로 정보가 없음.
(3) 상기 주장이 가능하기 위한 전제: 자신의 학설인 저연대기설 (Low Chronology)
* 문제점: 이 가설을 위해서는 학계의 다른 발굴자료는 모두 배제하고 이스라엘 핑켈스타인의 이 가설에 부합한 본인의 연구자료만 사용가능함.
위 주장을 뒤집는 고고학적 발견: 히르벳 케야파(Khribet Queyafa)
미니멀리즘 학파의 의혹제기: 히르벳 케야파의 거주민은 유다인/이스라엘 민족이 아니었을 것임
* 근거: 없음. 그냥 그럴 수 있을 거임.
▶ 발굴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분석:
- 탄소연대측정으로 기원전 10세기라는 것 확보함
- 요새화된 도시, casemate 벽, 당시 흔치 않았던 두 개의 성문(gate)
- 발굴된 토기들이 타 민족이 아닌 이스라엘 문화산물임을 지지함
- 발굴된 동물뼈를 통해 추론한 해당 거주민의 식습관 (돼지고기를 먹지 않던 문화)
- 행정체계를 가늠할 수 있는 도기(陶器) 손잡이의 시스템
- 유일신 종교체계로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던 것을 추측할 수 있는 이례적 "여신상"의 부재
- 요새화된 도시가 필요했다는 지정학적 요인 (유다왕국과 팔레스티아/필리스티아/블레셋의 국경)
◈ 발굴을 토대로한 요세프 가핑켈 교수의 주장:
히르벳 케야파는 10세기 이스라엘인들이 거주한 지역임.
추가 자료:
진행 중인 히브렛 아'라이의 발굴 자료가 위 발굴에 대한 해석과 맥락상통함.
추론:
텔단 석비+히르벳 카야파의 발굴자료
= 히르벳 케야파는 기원전 10세기 유다왕국의 요새도시
추측:
추가적인 발굴자료로 위 추론이 더 공고하게 될 것임.
여러분의 판단은 어떠신가요?
전 이번 질문을 따라가면서 처음으로 이런 고고학적 사료(史料)를 통한 분석과 의견 주장의 과정을 경험해봤습니다. 그저 한쪽에서 주장하는 바만 보지 않고, 가능성을 열고 양쪽을 다 찾아본 거죠.
물론 저에게도 일종의 확증편향은 존재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만, 그건 사실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각자의 경험과 세계관, 패러다임에 입각한 시선으로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을 해석하죠.
다윗은 성경에만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마 성경 기록으로 추론해본 역사적 시간대에 살았을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 훨씬 높고요. 그 시간대에 유다왕국을 통치했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가 그 반대 의견에 대한 근거보다 더 설득력 있고 설명력(Explanatory Power)이 있으니깐요.
다음 글에 이 프로젝트를 조사하며 배운 점과 느낀 점을 적음으로서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 하려 합니다.
방대한 량의 자료를 읽어주시고 끝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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